북한이 11일 대외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대해 "조선의 ICBM시험발사가 있은 후 남조선의 현 집권자는 도이칠란트를 행각(방문)하여 베를린에서 '대북제안'을 담은 연설을 했는데 이것 또한 친미사대와 동족대결의 낡은 틀에 갇힌 채로 내놓은 제안이라면 북측의 호응을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대해 직접적인 평가와 반응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과녁은 북핵이 아니라 미국의 전쟁소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비판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촉구하는 맥락에서 하나의 사례로 베를린 구상에 대해 언급했다.
그것도 조총련 기관지라는 간접 매체를 통해 “친미사대와 동족대결의 낡은 틀에 갇힌 채로 내놓은 제안이라면 북측의 호응을 기대할 수 없다"는 식으로 가정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조선신보는 “현재로서는 남조선당국이 ‘북핵문제’에 대하여 떠들어댐이 없이 북과의 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여있는지가 관건적인 문제”라며, “오는 8월에는 북을 겨냥한 미남(한미)합동의 ‘을지 프리덤 가디언’ 연습이 실시될 예정”이라는 점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조선반도(한반도) 긴장격화의 주된 요인인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할 결단을 내릴수 있는가”를 물은 뒤 “북측은 남조선당국의 관계개선의지를 귀에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가장 긴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각오와 행동을 근거로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8월에 열리는 을지프리덤가디언 연합훈련을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고 대남정책의 방향을 결정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과거 한국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살펴보면 내용이 부정적일수록 반응 시점이 빨랐고 내용도 여지를 남기지 않고 거부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형태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1년 5월 9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한 제안, 즉 국제사회에 핵 포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 그 다음해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는 베를린 제안에 대해 북한은 2일 만에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조평통 기자문답(2011년 5월 11일)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체제 모독"이라고 일축했다.
북한은 통일대박론을 주창한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2014년 3월 28일)에 대해서는 제안 3일 만인 3월 31일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제 코부터 씻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2000년 3월 9일)에 대해서도 6일(2000년 3월 15일)만에 평양방송을 통해 "허튼 소리"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이때는 "(남측이)행동으로 변화를 보이면 민족의 운명을 놓고 협상할 것"이라고 당국 간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과거의 예와 비교할 때 이번 베를린 구상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5일 만에 우회적인 매체를 통해 가정법을 사용하면서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연합훈련의 중단을 연계하는 형태로 나왔다.
통일부 관계자는 "조선신보 기사를 통한 반응을 북한의 공식 반응이라고 보기는 다소 애매하고 조심스런 측면이 있지만, 조만간 북한의 공식 매체에서도 조선신보를 따라 반응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한은 사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연일 비판을 퍼붓고 있다. 지난 10일 노동신문에서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거론하며 "남조선 집권자의 미국행각은 상전에 대한 비굴한 안부·아첨과 구걸로 얼룩진 치욕스러운 친미 굴종 행각"이라며, "이런 추악한 친미분자는 보다 처음"이라고 비난했다.
앞으로 나올 북한의 공식 반응을 봐야 하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직설적인 비난과 달리 베를린 구상에 대한 조선신보의 언급은 간접적이다.
'핵보유국으로서 미국만 상대하겠다'는 북한이지만, 문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은 북한이 그동안 요구해온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존중이 전제로 깔려 있고, 각론으로 들어가서도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 금지'처럼 솔깃한 내용도 들어있어 일부 여지를 남긴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과거 베를린선언이나 정부 선언에 북한이 좋게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공식 반응이 부정적으로 나올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북한의 표면적인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호응을 유도해 나가되,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끈기 있게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한 능동적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