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의 사이다 추궁과 정호성의 허무한 반성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미르와 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하고 주요 인사에도 개입하는 등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데도 왜 당시 우병우 수석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경고음을 켜지 않았을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영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우 전 수석에 대한 3차 공판에선 증인으로 출석한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을 상대로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 의문이지만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특히 재판에서 검찰측 증인 신문은 답답했던 반면, 재판장인 이영훈 부장판사는 '사이다성' 추궁을 해 주목을 끌었다.

정 전 비서관은 "당시 너무 안이했다"는 허무한 반성문을 내놨다.

그러나 피고인인 우 전 수석측은 "당시에는 피고인(우병우)이 이석수 특별감찰관으로부터 감찰 대상이 되고 언론도 우 전 수석 집안의 넥슨땅 거래 의혹을 집중 제기해 최씨의 국정농단 사건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고 변명으로 일관했다.


먼저 이 부장판사는 정 전 비서관에게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사건때는 당시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문건에 등장하는 청와대 비서관.행정관을 상대로 감찰 조사를 했는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때는 청와대 대응이 왜 달랐던 거냐"고 물었다.

이에대해 정 전 비서관은 "정윤회 문건때는 청와대 비서관.행정관 등 내부인사가 관련됐고 검찰에 고소도 했기때문에 "(청 민성수석실이) 감찰 조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순실씨 (국정농단)사건은 갑자기 급격하게 커졌고 그 전까지는 최씨의 개인일탈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그러나 "개인 일탈로 보기 어려운게 최씨가 청와대 이런저런 일에 관여하고 문건도 전달받고 인사도 개입했는데 어떻게 (그것이) 개인적 문제냐, 오히려 더 비호하려고 했던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정 전 비서관은 "당시까지만 해도 (저는)미르와 K스포츠 재단을 대통령의 문화융성 국정기조 일환으로 봤고 최씨 관련은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안종범 전 수석과 최순실씨에게 직접 물었지만 (그들은) 재단모금은 '전경련이 알아서 한 것'이라고 대답했고 재단 자금 유출에 대해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안이했다'고 대답했다.

정씨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납득을 하지 못한 이 부장판사는 "안이한 것이 아니고 은폐하려 했던 거 아니냐"고 거듭 추궁했다.

이 부장판사는 "기업들한테 많은 돈을 출연받는데 거기에 최순실씨가 끼어 있다. 최씨가 무슨 힘이 있어 돈을 모으나. 권력이 낄 수 밖에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비선을 빼자'는 것은 문제가 뭔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덮자는 생각이다. 당시 청와대 전부가 그런 것 아닌가, 최순실씨가 무슨 힘이 있어 돈을 출연 받는가"라고 물었다.

재판장의 거듭된 질문에 당황한 듯 정호성 전 비서관은 잠씨 대답을 멈췄다.

그리고 "저도 공소장(최순실.안종범)을 보고 놀랐다. 저하고 작년 12월 20일 기소됐는데 공소장이 두꺼웠다. 내 것은 한두장이었고 나머지(최씨와 안씨 공소사실)엔 많은 얘기가 써 있었다. 공소장 보고 깜짝 놀랐다. 검찰 조사 받을때 다 모든 얘기를 처음 들어서 황당했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몰랐다. 되게 안이했다"고 변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최순실씨를 가장 잘 아는 극소수 가운데 한명인 정 전 비서관 스스로 눈이 멀었다는 자백이다.

◇ 우병우 국정농단 직무유기는 "개인적 곤경으로 어려워 몰랐다" 발뺌

이 부장판사의 추궁에 앞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정윤회 문건 사건'때와 달리 '국정농단 사건'에선 감찰도 하지 않고 왜 직무를 유기했는지는 대해 검찰과 변호인측 신문이 오고 갔다.

넥슨이 매각한 부지 위에 새로 지어진 강남역 ‘센트럴푸르지오시티’ 건물.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우 전 수석 변호인측은 정윤회 사건때와 달리 감찰 조사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시 우 전 수석이 이석수 특별감찰관으로부터 감찰 대상이 되고 언론에서는 넥슨땅 특혜매매 의혹을 계속 제기해 국정농단 사건을 신경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인데 정 전 비서관은 동의하냐"고 물었다.

정 전 비서관은 "네"라고 대답했다. 국정농단 직무유기 혐의를 '개인적 곤경 탓'으로 돌려 버린 것이다.

이에대해 검찰측은 "피고인(우병우)에 대한 감찰은 개인적 일일 뿐인데 민정수석이 개인적 일로 감찰당한다고 대통령과 관련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을 신경쓸 여력이 없다고 변명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 따졌다.

우 전 수석측은 국정농단 사건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선 이처럼 "몰랐다.여력이 없었다"는 식으로 빠져 나가려 했다.

특히 우병우 전 수석은 작년 10월 20일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 에 앞서 민정수석실에서 건넨 '미르.K재단에 대한 법적 검토 문건'도 "민정수석실의 행정관이 언론 보도 내용을 보고 간략하게 1-2시간만에 정리해 보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 검토문건'은 비선실세 최순실 논란이 확산되자 안종범,우병우,김성우 전 수석 등이 10월 20일 대수비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을 직접 면담하고 대수비 회의용으로 민정수석실에서 만든 문건이다.

이 법적 검토 문건에는 "민간인인 최순실은 공무원이 아니므로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재단모금은 처벌할 수 없고 자금도 유용하지 않았기때문에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결과적으로 우 전 수석은 "몰랐다"는 식으로 빠져나가려는 술책으로 읽힌다.

특히 대통령도 보고 받은 법적 검토 문건을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1-2시간만에 언론 보도를 보고 짜집기 정리한 것이라는 변명은 '코미디'라는 말 밖엔 나오지 않는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