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순방길에 나선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핵폐기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가장 이상적인 것은 '원샷'으로 북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며 "북한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화의 조건은 최소한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핵동결을 약속해야 본격적인 핵폐기를 위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6·15 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에서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천명한 것을 재확인한 셈이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 '핵동결-핵폐기'라는 단계적 접근법을 다시 한 번 강조함으로써, '압박과 제재, 그리고 관여'라는 트럼트 대통령의 강고한 대북 접근법에 일정 정도 변화를 주기 위한 의도적 발언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과거 북한이 영변 핵시설 동결 이후 국제사회와의 합의를 파기한 전례를 의식한 듯 "(핵동결) 중간에 여러가지 이행과정을 거칠 수 있다. 각 과정들은 하나하나 완벽하게 검증돼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며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열흘 전 워싱턴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면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동결과 한미간 군사훈련은 연계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한미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며 "그 입장에는 아직 달라진 게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북한이 스스로 핵동결에 나선다면 한미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지만, 핵개발 자체는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불법행위 중단에 대한 합법적인 훈련 축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미 국무부 대변인의 발언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 한미간 긴밀한 공조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 4월 말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문 특보와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이날은 "문 특보 발언은 개인적인 의견이고 또 핵폐기 과정 중 한미가 긴밀히 협의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라며 선을 그었다.
핵폐기 과정에서 북한에 여러가지 충분한 '당근'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한미 군사훈련 축소를 요구하는 북한에 결코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또 "핵폐기에 이를 때까지 여러가지 단계를 서로가 행동 대 행동으로 교환해야 한다"며 "더 나아가 핵시설 폐기 단계에 들어선다면 한미가 무엇을 줄 수 있을 지 등에 대한 (한미간) 협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핵 해결을 위한 단계적 접근 방식은 미국 내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만큼,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공동의 해결방안에 합의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한국 언론에서 (문 특보의) 개인적 발언에 '미국과 입장이 다른 거 아닌가', '미국이 하지 않는 얘기를 먼저 하는 게 아닌가' 등으로 민감하게 다루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 정상간 엇박자, 사드배치 이견 노출 등 미 조야 일부의 목소리를 과장해 보도하는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순방 소감에 대해서는 "첫 한미 정상회담은 오랜 정상외교 공백을 하루 빨리 복원시키고, 두 나라의 동맹관계를 더욱 튼튼히 하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공조 방안을 찾아내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