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빈소부터 계단을 거쳐 1층 입구까지 빈틈없이 줄줄이 늘어선 사람들은 불침번을 정하고 나서야 간신히 쪽잠을 청했다. 건물 밖을 둘러싼 최전방 부대원들의 사정은 더 열악했다. 돗자리 한 장으로 늦가을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오롯이 버텨내야 했다. "시신 탈취를 막고 고인의 존엄을 지키겠다"며 전국에서 모여든 수백 명의 시민부대. 이들은 백남기 씨가 숨을 거둔 지난해 9월 25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밤을 새웠다.
10월 23일, 한 차례 기각됐던 부검영장이 발부되고 경찰관 800명이 별안간 들이닥치자 시민부대는 또다시 맨몸으로 막아섰다. 대학생들은 안치실 앞에서 서로의 몸에 쇠사슬과 밧줄을 묶고 노래를 부르며 전의를 다졌다. 고인이 병에 걸려 숨졌다는 '사망진단서'를 절대 고쳐줄 수 없다는 병원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결국 세월호 유가족과 이른바 '시민지킴이단'은 이곳에서 일주일간 노숙했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공성전은 경찰이 부검을 포기한 28일까지 40여 일간 계속됐다.
이후 촛불이 타올라 정권을 갈아치웠고 지난 15일 서울대병원은 진단서가 발급된 지 9개월 만에 '질병사'를 '외인사'로 고쳐 적었다. 사고 책임이 그를 물대포로 직사 살수한 경찰에 있다고 뒤늦게 인정한 셈이다. 경찰도 다음 날 기다렸다는 듯 잘못을 인정하고 나섰다. 병원과 경찰 모두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허리를 숙였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성토는 그치지 않고 있다. 정황상 다른 목적을 위해 사과를 이용했다는 의심이 나오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은 기자회견 하루 전부터 감사원의 감사를 받게 된 상태였다. 9년 만의 종합 기관감사다. 경찰의 경우 '수사권 조정'을 천명한 대통령으로부터 '인권 경찰'로 탈바꿈하라는 지시를 받은 터였다. 경찰의 인권침해 사례로 늘 거론되던 게 바로 이 '물대포 사건'이었으니 결국 이번 사과는 수사권 조정의 '명분쌓기'용이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 사과가 '인권 경찰'의 전초기지로 탄생한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나온 건 그런 점에서 공교롭다.
사과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진정성은 더욱 흐릿해 보인다. 온통 말뿐이고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병원 측은 기자회견에서 20여 분간 의료계 시스템 타령이나 늘어놓다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 줄행랑치려 했다. 진단서를 작성한 백선하 교수에 대해서는 "외압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라고 외려 감쌌다. 이철성 경찰청장 역시 "정권 바뀌니 입장도 바뀌냐"는 기자의 질문에 눈도 마주치지 않고 상황을 넘겼다. 사과한다는 게 물대포를 쐈다는 점인지 아니면 '시신 탈취' 시도와 관련한 것인지를 나타내는 '목적어'도 빠져 있었다.
고인의 딸 백민주화 씨는 최근 이들에 대해 "진심으로 아빠에게 미안해하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촛불이 타오르지 않았다면 유가족과 시민부대는 과연 이 사과를 들을 수 있었을까.
늦었지만 진심이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려면 재발 방지책뿐 아니라 진정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구체적으로 소상히 밝혀야 한다. 코끝이 시릴 정도로 싸늘했던 지난가을, 시신을 앞에 둔 유가족에게 한 달 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한 책임. 안치실 앞 대학생들에게 서로의 몸에 쇠사슬을 채우게 했던, 바로 그 공성전을 촉발한 책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