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김도현)는 KBS 문화부 송명훈·서영민 기자가 KBS를 상대로 제기한 감봉처분무효확인소송에서 "피고가 2016년 8월 24일 원고들에 대해 한 각 감봉 2월의 징계처분은 모두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7월 29일, KBS 보도본부 문화부 팀장과 부장은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데 평단에서 혹평하는 것은 문제라며 두 기자에게 '관객과 따로 가는 전문가 평점'(가제)이라는 아이템으로 취재할 것을 지시했다.
이때 두 기자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아 흥행 돌풍이라고 판단하기 어렵고, 뚜렷한 근거 없이 전문가 평점을 비판하고 특정 영화를 옹호하는 취지의 보도를 할 경우 공정성과 객관성 문제가 발생하며, 결국 '인천상륙작전'을 지나치게 홍보하는 보도를 하게 된다는 이견을 제시하며 취재를 거부했다.
두 기자는 아이템과 관련해 의견이 부딪치자 KBS기자협회 이영섭 협회장을 통해 KBS 방송편성규약 제11조 1항에 따라 편성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으나, 사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해 8월 24일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두 기자에게 각각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징계 사유는 KBS 취업규칙 제4조(성실)를 위반하고 인사규정 제55조 1호(법령, 정관 및 제 규정에 위반하거나 직무상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경우)와 2호(직무상의 의무에 위반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했을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두 기자는 인사위원회 재심을 청구했으나 사측은 10월 19일 특별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두 기자는 KBS 방송편성규약 제6조 3항에 따라 '자신의 신념과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프로그램의 취재 및 제작을 강요받아 이를 거부한 것'이라며 소송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두 기자의 청구가 '모두 이유 있다'며 인용했다.
재판부는 우선 "KBS는 '인천상륙작전'에 제작비 30억 원을 투자했다"며 "KBS '뉴스9'를 기준으로 '명량' 2회, '부산행' 1회를 보도한 것과 비교해 '인천상륙작전'을 총 9회 보도해 타 방송사(MBC 4회, SBS 2회)보다 보도량이 지나치게 많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들은 아이템 제작과 관련해 의견 제시·참여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지시를 받았고, 피고가 공영방송사로서 공정성과 중립성을 가지고 방송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해 이견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방송 주제의 선정을 포함해 방송의 제작 및 편성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충돌할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절차가 존중되어야 하며 그를 통하여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방송에 대한 공적 신뢰가 제고될 수 있다.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사기업과 달리 표현의 자유를 존립 기반으로 하는 공영방송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피고의 지위를 고려할 때 가치관의 충돌이나 의견의 대립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의견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설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리포트 제작을 거부한) 원고들의 행위는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KBS는 공영방송사로서 보도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할 의무가 있고 △방송의 공정성은 구체적으로 KBS의 구성원들에 의해 실현되므로, 구성원들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자신의 신념과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프로그램의 취재·제작을 강요받지 않도록 그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며, '공영방송' KBS의 지위와 책무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는 같은 날 성명을 내어 재판부의 판결을 환영했다.
새노조는 "이번 판결로 당시 데스크 등 책임자들이 오히려 취재·제작의 근간을 흔드는 잘못된 처사를 해왔음이 증명됐다"며 "그간 사측이 보인 비이성적 행태로 인해 송명훈, 서영민 두 기자는 회복할 수 없는 커다란 정신적 고통 속에 휴직 중이다. 이들이 겪은 고초는 누가 어떻게 보상하고 책임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사측은 두 기자 징계 무효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그간의 업보를 조금이나마 씻어야 한다. 아울러 고대영 사장과 정지환 통합뉴스룸 국장, 당시 문화부장 등 보도책임자들은 두 기자에게 가한 부당 징계와 모욕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