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포석은 줄줄이 예정된 청문회 정국과 추가경정예산안 등이 처리되는 6월 임시국회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선 패배 이후 9년 동안 집권하며 잊고 있던 '야성(野性)'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한국당은 31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국회 임명 동의안 표결에 불참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자료도 제출이 안 되고 해명되지 않은 의혹이 남아있는데, (표결을) 강행하는 데 의원들이 이해를 못하고 있다"며 불참 사유를 밝혔다.
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들어가서도 임명 동의안이 상정되는 순간 고성과 야유를 보냈다. 표결이 시작되자 일제히 퇴장하는 등 강한 반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국당이 표결 참여 여부를 계속 저울질하면서 이날 오후 2시 예정됐던 본회의가 지연돼 3시 반이 넘어서야 시작됐다.
한국당은 협치 원칙이 깨진 결과를 여권의 탓으로 돌렸다. 정 원내대표는 이 후보자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 채택안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3개 정당만의 합의로 처리된 데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항의 차원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제1야당인 한국당 간사가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정하는 것은 협치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민주당을 성토했다. 본회의장에서 퇴장한 뒤에는 "협치를 깬 원인 제공, 이런 사태 벌어진 것은 전적으로 정부 여당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표결에는 참석했지만, 바른정당도 이 후보자 인준에 대한 '반대' 당론을 실행했다. 실제 임명 동의 반대가 20표에 달했다. 바른정당은 이 후보자 개인의 결격 사유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5대 비리'로 규정했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 공약을 파기했다는 의혹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야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국무총리 인준을 밀어붙이면서 향후 입각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는 더욱 빡빡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 원내대표는 "앞으로 있을 내각 청문회에 대해서도 지금 어떤 도덕적 기준을 해야 할지 나쁜 선례를 남긴 것에 대해서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도 "대통령이 공약 후퇴는 아니라고 하고 사과도 안 했기 때문에 그 원칙이 지켜진다고 보고 나머지 장관 청문은 엄격하게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위장전입 전력이 드러난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임명에 부적격 의견을 내겠다는 것과 같다. 총리를 제외한 장관급 후보자들의 경우 국회 동의 없이 임명이 가능하다.
총리 인준안과 사드 문제로 정국이 냉각될 경우 당장 6월 임시국회 처리를 목표로 한 추경안과 세월호 특조위 2기 법안 등의 국회 처리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본회의 표결이 전제된 총리 임명 동의안과 달리 일반 법안들은 야당의 동의 없이 본회의에 상정할 수 없다.
국민의당도 호남 출신인 이 후보자 관련 사안과 달리 법안 처리 문제에선 여권과 시각을 달리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여서 협치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강행한 이 후보자 임명이 향후 국정운영의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