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섭 그림, 천년 역사의 울릉도 향나무

학고재갤러리 '손장섭: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전

울릉도 향나무 Juniperus Chinensis in Ulleungdo, 2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45x112cm.
손장섭(1941)의 회고전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는 질곡의 역사를 견디며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민초들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나무로 또는 역사적 장소의 풍경으로, 역사적 사건의 한 장면으로 표현된 그의 작품들은 꿋꿋하고 밝은, 생명력이 넘치는 기운을 담고 있다.

76살의 노화가는 19살 때 4.19을 겪으며 그 때 그린 '사월의 함성'(1960)을 시작으로, 1980년에 '기지촌', 분단의 아픔을 그린 '역사의 창'(1990), 6월 항쟁의 정신을 기리는 목판화 '유월춤'(2015)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담은 작품을 그려 왔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그가 1980년 민중미술을 주도한 '현실과 발언' 창립 멤버였음을 일깨운다.

이번 회고전이 열리는 학고재갤러리에는 38점이 출품되었다. 이번 출품작 가운데 20 점 가량이 자연 풍광을 다루었고, 그 중에서 10 점 가량은 나무를 다루고 있다. 이 자연 풍광과 나무 역시 이 땅의 역사와 민중의 숨결이 배어 있다.


2012년에 그린 '울릉도 향나무'(맨 위 작품)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향나무를 그린 작품이다. 수령이 약 2,000년 정도 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졌다. 천연기념물 30호인 용문사의 은행나무 보다 오래되었다. 깎아내린 듯한 절벽에서 당당하게 뻗쳐올라 있는 모습은 그 뿌리가 얼마나 깊고 단단히 자리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우리나라 국토의 끝에 위치한 울릉도는 사연이 많은 곳이다. 우산국이라 부르던 시절 신라에 귀속 당했다. 고려 때는 여진족이 울릉도에 침입하여 섬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때는 일본이 울릉도를 죽도로 부르며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향나무는 이 천년 동안 이 모든 일을 목격했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을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도 이 때문에 드는 듯하다. 나무를 그린 힘찬 붓질은 오랜 시간 풍파 속에서도 한결같은 모습을 지킨 나무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향나무의 기백에 구름도 길을 비켜 흐르는 듯하다.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한 붓질은 민중을 떠올리게 한다.

사월의 함성 April Revolution, 1960, 종이에 수채 Watercolor on paper, 47x65cm.
전시를 기획한 미술사가 유혜종은 손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손장섭은 2000년대의 나무와 자연 풍경 연작에서 자연을 민중 자체와 동일화한다. 그래서 그의 나무와 자연 풍경들을 보면 그가 어떻게 민중을 이해하고 탐구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에게 나무 혹은 자연은 침묵의 존재, 수동성의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그 고요함 속에서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힘을 동시에 발견한다. 그것의 수동성은 모든 것을 향해 있는 개방성이고 그것들을 품을 수 있는 포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손장섭은 이 자연의 표면에 새겨지고 포개져 있는 민중의 삶과 역사를 드러낸다. 이 점에서 그는 민중미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전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월의 함성'(1960, 바로 위 작품)은 손장섭이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그린 데뷔작으로 그의 작가로서 사회의식을 반영한다. 이 작품은 당시 목격한 4.19혁명의 순간을 담았다.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던 학생과 시민의 모습이 보인다. 이마에 둘러멘 흰 띠와 힘차게 들고 있는 현수막은 그들의 결연함을 느끼게 한다.

이번 전시는 손장섭의 2000년대에 제작한 신목(神木) 시리즈와 자연 풍경화를 중점적으로 조명하고, 이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되는 과거의 역사화를 함께 전시하여 손장섭이 한평생 쌓아온 화업의 전모를 보여주는 전시로 꾸몄다.

동도에서 서도를 보다 Looking at Seodo from Dongdo(in Dokdo),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97x291cm.
손장섭이 오랫동안 다루고 있는 신목과 자연 풍경은 민중의 삶과 역사가 전개하는 터전이자 그 역사가 배어있는 환경이기에 민중 미술의 정신을 가장 본질적으로 담고 있다.

손장섭은 독도, 울릉도, 백령도 등의 섬부터 금강산, 설악산, 북한산, 금병산 등의 산까지 전국의 산하를 캔버스에 담는다. 또한, 용문사 은행나무, 속리산 정이품송, 울릉도 향나무, 영월 은행나무 등 산하에서 특히 고목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 자연은 역사와 현실에서 유리된 관조적 대상이 아니라 민중의 삶이 펼쳐지는 터전이자 역사가 배어있는 현장이다.

전시 작품은 또한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천막촌>(1960), <답십리 굴다리>(1960), <남대문 지하도>(1960) 등은 한국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담고 있다. <달동네에서 아파트로>(2009), <우리가 보고 의식한 것들>(2011) 등은 군부 독재 정권 아래 산업화를 경험한 혼란의 시기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대해 유홍준 미술 평론가는 이렇게 평한다. "손장섭의 화력 50여 년을 내보이는 이번 회고전을 내가 뜻깊게 생각하는 것은 손장섭의 작품은 그가 현실과 역사를 그리든, 노목이나 산을 그리든 그것은 우리네 삶의 체취이고, 의지이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서정이라는 그의 예술세계를 명확하고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 기간 : 5.17- 6.18
전시 장소 : 학고재갤러리 전관
전시 작품 : 38점
도판 제공 : 학고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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