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이란 문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피터 브룩스 '정신분석과 이야기 행위'

문학비평가 피터 브룩스의 신작 '정신분석과 이야기 행위'가 출간되었다. 이 책을 통해 정신분석과 문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정신분석 비평은 어떻게 작동하며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브룩스의 사유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문학 텍스트를 어떻게, 왜 읽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다소 난해하고 심층적인 서사학 이론에 접근하는 입문서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 브룩스는 서사학과 정신분석을 고찰해 얻은 이론적 통찰을 응용하여 텍스트를 명확하게, 그리고 생산적으로 읽어낸다. 프로이트의 「늑대인간」 「도라」 사례와 『쾌락 원칙을 넘어서』와 같은 유명한 저작들을 면밀히 분석하는 한편으로 발터 벤야민, 로만 야콥슨, 스탠리 피시 등의 비평 이론에 대한 응답을 제시한다. 동시에 대중에게 친숙한 탐정소설 『셜록 홈스』를 비롯해, 플로베르와 발자크, 바르베 도르비이 등의 19세기 소설 텍스트를 면밀히 읽어나감으로써 “정밀한 읽기” 모델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정신분석 비평은 그 타당성과 효력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응답하여 브룩스는 정신분석을 분석가의 위치에 두고 작품 혹은 작가를 피분석가의 위치에 둔 채 전개하는 독해는 일방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럴 경우 정신분석과 문학 사이에 상호적인 소통이 발생할 여지가 사라지고 만다고 이야기한다. 정신분석이라는 앎의 체계가 특권화되면, 문학과의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앎이 생성되는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브룩스는 이러한 ‘적용’ 모델을 벗어나 다시 프로이트에게 돌아가 그에 이미 내재했던 문학 텍스트와 정신분석의 관계성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작품/텍스트의 내용을 최대한 정밀하게 읽고 문학 텍스트와 정신분석의 쌍방향적 관계를 통해서 내러티브의 역동성을 펼쳐 보여야만 한다. 이처럼 이 책은 정신분석 이념과 그 무의식으로서의 문학의 연결성, 형식에 대한 연구로서의 서사학을 갱신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전히 문학은 정신분석을 이해하게 하고, 우리 삶의 진실을 가르쳐주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을 읽고자 한다면, 먼저 문학 텍스트를 거듭 정밀하게 읽지 않으면 안 된다.

브룩스는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텍스트들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텍스트 독해 방식을 보여주면서 브룩스는 내러티브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한다. 이야기를 듣는 과정 혹은 텍스트를 읽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구성적인 것이며, 간극을 메우고 파편들을 일관성을 지닌 전체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정신분석과 문학은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어떤 해석적 대상도 단 하나의 이론, 관점, 개념, 언어로만 다뤄질 수 없다. 따라서 비평가 혹은 분석가에게는 텍스트에 내재하는 대화적 과정을 복원하고, 더 많은 담화가 교차되고 낯선 시간이 모여들 수 있게끔 전이 상황을 구성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 책은 맨 앞에 실린 두 편의 편집자 서문은 브룩스 이론의 특징을 개괄하고 전작들을 소개하며 그의 논의에 내포된 쟁점들을 검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브룩스의 이론 세계를 포괄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망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1장 「정신분석 비평의 이념」은 정신분석 비평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전개, 발전되어왔는지를 살피고 프로이트의 사전쾌락 개념과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텍스트를 검토하며 노출증, 관음증 등의 에로틱한 쾌락과 독서 사이의 유추관계를 살펴본다. 결론적으로 브룩스는 정신분석이란 문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며 정신분석과 문학은 교류적, 전이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이야기한다.

2장 「여백에서 발생하는 변화: 구성, 전이, 그리고 내러티브」에서는 19세기 리얼리즘 소설과 프로이트의 「도라」 「늑대인간」 사례를 주로 분석한다. 모더니즘의 등장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시도는 동시대에 속한 것이기에, 이들 내러티브가 불완전하다는 유사성은 우연이 아니다. 브룩스는 분석가와 피분석가의 역할, 그리고 독자와 텍스트의 역할은 서로 뒤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처럼 치료와 내러티브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에서 “형식주의적 서사학”을 넘어서도록 이끈다. 여기에서 브룩스는 프로이트를 독해하는 과정에서 구성한 정신분석적 차원의 ‘전이’ 개념을 내러티브를 읽기 위한 또 하나의 모델로서 제안한다. 치유가 발생하는 장소는 과거와 현재, 환자와 분석가, 텍스트와 독자, 그 어느 쪽도 아니며 전이라는 중간의 왕국, 불확정성을 인정하는 교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3장 「이야기꾼」은 19세기 산업화 및 인쇄 기술의 발달과 함께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소설가들이 어떻게 서사 내부에 구술적인 의사소통 장면을 복원해냈는지에 대한 담화로 시작된다. 이야기를 듣는 재능이 소멸하고 있다는 시대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야기 행위가 속한 장소는 경험을 전하고 공유하는 일상적 생활세계이며 소설의 의의란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데 있다는 벤야민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조망한 뒤, 브룩스는 바르베 도르비이의 소설 「휘스트의 숨겨진 패」를 상세히 논한다. 그럼으로써 프로이트와 벤야민의 이론에 따라 이야기 행위, 내러티브 텍스트의 전이, 교환 상황 등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나간다.

4장 「내러티브의 구성: 피터 브룩스와의 대담」은 이 책의 편집자 존 리카드와 해럴드 슈바이처가 브룩스와 나눈 대담이다. 브룩스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부터 플롯화와 내러티브에 대한 논의, 그리고 향후의 연구 과제까지 아우른다. 이 책의 편집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브룩스의 저작은 내러티브의 역동적인 과정을 이해하고 논의하기 위한 통합적이고 탄력적인 모델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브룩스의 매력이자 뛰어난 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학술서와 대중서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피터 브룩스의 문학 텍스트 분석은 일반 독자들이 쉽고 흥미롭게 읽어나가며 “정밀하게 조율하고 의심하며 읽는 태도”의 중요성을 깨우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이론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텍스트 자체에 내재하는 대화적 과정을 복원하고자 시도하며 누구보다 치밀하게 텍스트를 독해하고자 한 피터 브룩스의 태도는 해당 연구자들과 문학비평가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책 속으로

벤야민은 인쇄된 소설이 고독한 공간에서 소비되는 상황에 기인하는 미학과 독서의 윤리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담화를 내면화하여 집어삼키고, 담화 내부를 불꽃처럼 질주하여 기회가 되면 일의적인 의미 결정에 도달하는 독서 방식에 대한 반발이다. 이러한 독서 방식을 취하게 되면, 살아 있는 피조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환이라는 경험, 혹은 그러한 경험의 환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조언을 주고받는 형태로 지혜를 얻음으로써 반성─그리고 성찰─에 이르렀던 상호작용 또한 사라지고 만다. 벤야민이 회복하고 창조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모종의 독서 태도일 것이다. 즉 듣는 것에 가장 가까우며, 소비에 대한 긴장이 아닌 명상에 의한 긴장을 유발하고 내러티브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교환, 거래, 더 나아가 전이─정확히 정신분석적인 의미에서─를 전경화하는 듯한 독서 태도 말이다. (3장 「이야기꾼」, 130~31쪽)

비평가이기도 하고 철학자이기도 하며, 해석자이기도 한 우리 모두는 어떠한 형태로든 해석학적 폭력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결국은 우리 모두의 문제죠. 저는 프로이트의 해석학적 폭력이 다른 이보다 전체주의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스탠리 피시나 크레이턴에 반대하여, 저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진지하게 읽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프로이트는 자신의 해석적 도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프로이트의 저작을 특히 연대기적으로 읽어나가게 되면, 그것이 끊임없는 수정, 끊임없는 논리적 재조정, 끊임없이 덧칠하는 과정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장 「내러티브의 구성: 피터 브룩스와의 대담」, 166쪽)

피터 브룩스 지음 | 박인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18쪽 | 16,000원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