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출범 초기에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새정부의 국정운영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고, 국회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천명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초기에 정부조직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 기싸움으로 여야 지도부 초청 회동이 상당이 늦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새정부 출범 열흘만에 이뤄진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번 회동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하고 실무협의를 착수하기로 한 점은 정부여당과 야당이 기싸움을 벌이던 그동안의 국정운영 관행이 여야정 협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볼 법도 하다.
하지만 이날 청와대 회동에서 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이 현안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구체적으로 합의한 것은 없고 일단 국회로 공을 넘겨 놓은 것 뿐이다.
따라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결실을 내오지 못하면 역대 정부 초기의 보여주기식 일회성 이벤트와 다를 바 없다는 사후 비판을 면키 어려울 수도 있다.
대선 과정에서 각 당이 제시했던 공약 가운데 공통되는 공약을 우선 추진한다는 각 당이 동의했고 국회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큰 틀에서는 공통 공약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각론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공약들이 많고, 특정 주제에 대해서 공약을 내지 안을 경우도 많다. 공통공약이라고 해서 쉽게 합의될 것으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검찰·국정원 개혁, 방송개혁에 대해서 논의하기로 한 부분도 개혁이라는 당위조차 반대하기 어려워 국회 논의를 시작한다는 데 동의는 했어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밑그림부터 다를 수 있다.
일례로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해외정보원으로 개편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공약이지만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자유한국당 이철우 의원은 정보기관을 해외, 국내로 나누는 게 아니고 통합하는 추세라며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찰개혁, 방송개혁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에서 통과시키려고 했던 서비스산업발전법 규제프리존법 등은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들이 찬성입장인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반발 기류가 강해 합의에 이르기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여야 모두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합의가 수월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정책 등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는 굳이 여야정 상설협의체나 공통공약 같은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기존 여야 협상틀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따라서 이름에 걸맞는 정치적, 정책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가 협치 실험의 첫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