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해외에서는 통신이 끊어져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도록 휴대전화에 '라디오 수신 기능'을 의무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 강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은? 휴대전화로 라디오를 들으려면 내 돈을 들여 '데이터'를 써야 한다.
◇ 美·日 휴대전화에 라디오 수신 기능 의무
일본은 휴대전화 라디오 수신 기능이 활성화 돼 있다. 잦은 지진과 반복되는 화산 활동 등 재난 상황을 대비해 휴대전화에 반드시 FM 라디오 수신 기능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
재난 상황에 강한 라디오의 힘은 지난 2011년 동지진 때 위력을 발휘했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통신망이 끊겼어도 휴대전화 라디오를 통해 대피하거나 외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 미연방재난안전청이 2014년 스마트폰 FM 라디오 수신기능 활성화 운동을 개진하면서, 지난해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가 스마트폰에 라디오 직접 수신이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스마트폰 제조사는 라디오칩 활성화를 위해 증폭칩 등 추가 부품이 필요하고 DMB와 FM라디오를 병행하면 디자인 변화 및 단가상승 요인이 작용해 해외 제조사와의 경쟁에서 뒤쳐진다고 반대한다.
미래부는 "라디오 기능을 의무화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정하는 회원국 간 기술 장벽 설정에 해당 돼 무역 마찰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며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미래부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출시한 35종 가운데 28개 기종에 FM 수신칩을 내장했다. LG전자는 같은 기간 출시된 26개 전 기종에 장착했다.
미국 IT 매체 엔가젯은 지난해 8월 30일 "갤노트7이 라디오 직접 수신 기능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리뷰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수출용·국내용 휴대전화 모두에 라디오 수신칩을 탑재해놓곤 국내용 휴대전화에만 라디오 수신칩을 '비활성화'한 것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휴대전화로 라디오를 수신하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데이터'를 소비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 기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면서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이 DMB다. 그러나 DMB는 서울 경기지역과 주요 도시에서만 수신이 가능하다. 디지털 중계기가 설치되지 않는 곳에선 수신이 불가능하다.
또 배터리 소모량도 많은데다 안테나 역할을 하는 이어폰이 있어야하고 엘리베이터 등 협소한 장소에서는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는 단점이 있다.
◇ 전문가 "DMB·라디오 수신칩 모두 내장해 재난상황 대비해야"
전문가들은 "DMB와 라디오 수신칩 모두 스마트폰에 내장한 뒤 재난 상황에서의 수신 선택은 이용자가 하도록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상운 남서울대학교 교수는 "라디오는 우수성이 뛰어난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고 있고 이용자가 한꺼번에 몰려도 병목현상 없이 무한한 수신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재난 상황에서 가장 최적화된 방송수단"이라며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라디오 직접수신 의무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진봉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국민의 생명이 걸려있는 재난에 효율적으로 대비하고 편익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문제에 해외 단말기 제조사와의 무역마찰을 걱정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