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교사였던 그는 세월호 참사 당일 침몰하는 배에서도 비교적 탈출이 쉬운 곳에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며 정작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단원고 동료교사들은 고 교사를 두고 '그럴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동료교사는 "고 선생님은 수상인명구조 자격증이 있었다"며 "수영이라면 자신 있었을 테니까 틀림없이 그 분 성격에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챙겨서 데리고 나오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2년 전 근무지였던 중학교에서 불이 났을 때도 아이들을 대피시킨 뒤 혼자서 소화기를 들고 화재를 진압했던 고 교사였다.
동료교사들은 평소 자상하고 따뜻한 성품의 그를 제자들이 많이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고 교사는 체육을 가르쳤지만 학생들에게 무섭거나 엄하게 대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나무랄 때도 오히려 잘 다독거리며 인간적으로 대해 특히 말썽을 피웠던 아이들이 고 교사를 많이 따랐다.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짧아 '또치쌤'으로 불렸던 고 교사. 그는 가정에도 충실한 자상한 아버지였다.
동료교사들은 "고 교사가 아이들 육아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가정적이었다"며 "회식자리에서도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며 일찍 가는 등 헌신적인 아버지였다"고 기억했다.
그런 고 교사는 2014년 3월 단원고로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사고를 당해 많은 이들이 슬퍼했다.
고 교사의 유해 수습 소식이 알려지자 단원고에서도 '다행이다'는 분위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틀 전 스승의 날에도 학생들과 교사들이 기억교실에 찾아가 희생된 교사들과 미수습자인 고창석, 양승진 교사에게 편지와 꽃, 초상화를 전달했었다.
단원고 양동영 교감은 "두 선생님을 찾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신체 일부라도 가족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돼 다행이다"며 "단원고 구성원 모두는 미수습자 모두 하루빨리 수습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17일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발견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분석을 의뢰한 뼈 1점이 고창석 교사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유골이 발견된 곳은 침몰된 세월호 바닥(좌현)이 해저면과 접한 특별수색구역이다.
세월호 선체 인양 이후 미수습자의 신원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