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대통령 만드는 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

원내대표 출신 첫 정무수석, 청와대-국회 새지평 열릴까

전병헌 의원
국정운영에서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과 의지는 당선 직후 첫 일정으로 야당 당사를 방문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선명하게 각인됐다. 이제 남은 것은 이를 구체적인 실천에 옮기는 일인데 그 선봉에 전병헌 정무수석이 서게 됐다.

문 대통령은 14일 전병헌 전 의원을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했다. 전 신임 정무수석은 국민의정부에서 정무비서관과 국정상황실장을 지냈고 17,18,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3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내며 박근혜 정부 초창기 야당의 대여권 통로 역할을 했다. 전 수석은 이어 민주당 최고위원을 거쳐 19대 대선에서는 캠프에서 전략을 총괄하며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도 앞장섰다.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력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여당은 물론 야당,대국회 업무의 창구역할을 하는 정무수석에 기용됨에 따라 당청관계는 물론 청야(청와대-야당), 국청(국회-청와대) 관계가 이전의 어느 정부보다 원만할 것이라는 '기대지수'가 상승하고 있다.

그는 협상과 타협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대화를 중시하다보니 야당 시절 여당과의 관계도 괜찮았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는 거의 친구로 지낼만큼 친분이 있고, 윤상현 의원 등 친박 의원들과도 관계가 돈독하다. 전 수석은 특히 국민의정부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박지원 전 대표 등 국민의당 동교동계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데 적임자로 꼽힌다.

역대 정부 초기의 정무수석 인사를 보면 야당과 국회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볼 수 있다. 참여정부 초대 정무수석은 유인태 전 의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화로동선'이라는 음식점을 같이 했을 정도로 대통령과의 거리는 가까왔지만 선수(選數) 등 정치적 비중에서는 전 수석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양당제(나중에 열린우리당 분당으로 3당체제)하에서 정치적 주도권이 야당에 넘어감으로써 정무수석의 입지도 좁아졌고 결국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초창기의 정무수석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하지만 17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정책활동에 치중했기 때문에 정치적 비중이 낮았다. 특히 새정부 초기 인사실패와 정부조직법 개정 문제로 이명박 정부가 한 달 이상 늦게 출범한데다 이어서 발생한 광우병 촛불집회에 강경 대응기조를 이어가다 넉 달만에 자리를 내놔야 했다.

박근혜 정부 원년의 정무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이정현 의원이었다. 박 전 대통령 본인도 당선자 신분으로 국회를 방문해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면서 원활한 야당관계, 국회관계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초기 인사실패에 이어 박 대통령이 점점 권위적인 통치에 빠져들면서 정무수석의 역할은 극도로 제한됐다. 이정현 의원이 정부 출범 5개월만에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후임에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전 수석이 오면서 정무수석 자리는 대통령의 뜻을 정치권에 전달하는 자리로 전락했다.

전병헌 수석은 이와 관련해 "(그동안) 국회는 청와대가 일방적 협조를 강요한다고 여겨왔고, 청와대는 국회가 합리적 견제를 넘어 불필요한 적대적 자세를 가졌다고 여겨왔던 것이 사실이다"며 "그러나 사상초유의 5당 체제가 우리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

전 수석은 그러면서 "청대와 국회, 여당과 야당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 얼마나 합리적 자세로 협력할 수 있는지 국민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최선의 조력을 다하겠다"고 자신감을 불태웠다.

일각에서는 전 수석이 임종석 실장보다 연배가 높은 점 등을 들어 비서실장의 역할을 넘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 수석은 이에 대해서도 충분히 예상했었다는 듯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데 나이는 의미없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당연히 청와대내의 질서를 존중해가며 최고의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최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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