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11만5000원으로 1년 전 판매가보다 5000원 싸지만 며칠이 지나도 팔리지 않는다. 액면 5만 원과 3만 원 금화 두 개와 1만 원 황동화로 구성된 이 세트의 발행가는 12만 원이었다.
또 다른 인터넷 화폐수집 동호회에서는 '한국의 문화유산 시리즈' 중 2014년 나온 '하회와 양동'을 5만5000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랐다. 이 주화 역시 일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순은 19g으로 제조된, 액면가 5만 원의 이 주화는 2014년 11월 발행 당시 가격이 6만 원이었다. 2년6개월 동안 가격이 4000원 떨어졌지만 구입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에서 매물로 나온 액면가 10위안짜리 중국의 판다 은화는 30분도 채 안돼 3만 원에 거래됐다.
여분이 있으면 구입하고 싶다는 댓글도 달렸다. 순은 30그램으로 만들어진 이 판다은화의 액면가는 10위안, 우리 돈으로 1600원 정도다. 재료로 사용된 순은 30그램의 가격인 2만2000원여 원에 비해 36%(8000원)의 프리미엄이 붙은 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기념주화가 중국에 비해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지 못하고. 따라서 가치도 저평가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념주화를 발행하는 목적은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행사나 유적, 유물, 자연, 문화유산 등에 대해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올림픽 등 주요행사의 경우 재원을 마련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기념주화가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소장가치를 높이는 것에 의해 가능하다. 소장가치는 기념대상의 의미, 주화의 디자인, 제조기술 등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무엇보다 희소성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이에 비해 화폐수집인구 2000만 명이 넘는 중국에서 매년 발행되는 1온스(31.1그램) 판다은화는 800만개가 발행된다. 화폐인구 대비 발행량에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비해 훨씬 높다.
판다주화는 디자인이 좋다는 평가도 많지만 무엇보다 희소성이 보장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상승한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국내 기념주화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액면가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지난해 발행된 평창동계올림픽 기념주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은화 8종의 1차 최대 발행량은 20만 개다. 중국이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발행한 기념은화 1차 60만 개와 비교하면 평창의 발행량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희소성이 없다고 본 수집가들이 구입을 꺼리면서 실제 판매된 숫자는 최대 발행량의 60% 수준인 12만8000장에 불과했다.
한 화폐수집가게 상인은 "인터넷에 올려서 거래가 안 되면 은행에서 액면가로 교환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소장가치가 있다는 언론 기사를 보고 한두 번 호기심에 구입했다가 가격이 오히려 떨어지는 것을 경험한 뒤 기념주화를 구입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고 말한다.
해외에서도 인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최근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비롯해 기념주화가 발행될 때 마다 일정량의 해외 판매 분량을 배정하고 있지만 실제 판매량은 극히 미미하다. 한국의 기념주화는 수집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해외에서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념주화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것은 중국 정부차원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우선 거래활성화를 위해 기념주화를 구입할 때 카드수수료와 부가세를 면제해 둔다. 기념주화 사업을 국가 재정 확충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저축을 늘리는 효과도 얻기 위해서다.
덕분에 매년 발행되는 판다 금.은화는 중국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기념주화 사업은 정책이 없다고 할 정도로 안이하다. 제대로 된 수요 분석이나 시장조사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한 화폐수집상인은 "기념주화를 구입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화폐수집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이로 인한 수요 감소가 기념주화 사업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급사정을 감안한 발행물량 조절 등을 통해 화폐수집의 저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주무기관인 한국은행이 너무 안이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며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우표처럼 머지않아 기념주화 시장과 수집 문화자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념주화가 괄시 받는다는 것은 그것이 기념하려는 대상의 가치까지 훼손하는 것이 돼 차라리 안 하는 것보다 못하다는데 유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