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 당일인 5월 9일. 투표를 마친 기자는 경기 김포시에 있는 한 영화관으로 향했다. 대선을 맞이한 오후의 영화관은 가족 관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투표를 마친 후, 함께 자녀와 영화를 보러 왔다는 부모들도 여럿이었다. 특히 투표소에 자녀를 동반한 것이 처음이었다는 부모들이 많았다.
경기 김포시에 거주하는 김혜림(34·여) 씨는 투표소가 붐빌까 걱정해 아침부터 가족끼리 총출동을 했다가 영화관에 왔다.
김 씨는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지는 대선이다보니 아무래도 더 좋은 지도자를 뽑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유독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의미있게 느껴지고 떨리는 마음이 들더라"고 고백했다.
자녀를 데리고 투표소에 간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도 민주 시민으로서의 경험을 쌓아주려 함께 투표소에 갔다. 늦은 아침을 먹고 영화관에 와서 이제부터는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직장인 손정은(36·여)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대선일에 다행히 휴무를 할 수 있었고, 아들 둘과 함께 여유 있게 영화관 나들이를 나왔다. 애니메이션 영화 관람을 마치면 가족끼리 나란히 투표소로 향할 예정이다.
손 씨는 "미취학 아동은 기표소까지 동반이 가능하다고 하길래 처음으로 아들들을 데려가 보려고 한다. 이번 대선까지 유독 우여곡절이 많지 않았나. 여러모로 역사적인
대선"이라며 "내가 투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의 '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가족 관객 다음으로는 20대 연인들이나 친구들이 많았다. 이들은 활기띤 얼굴로 웃음꽃을 피우며 영화관 안을 돌아다녔다.
서울에서 자취 중인 대학생 양준모(20·남) 씨는 아직 주소 이전을 마치지 못해 간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양 씨는 "첫 투표, 그리고 첫 대통령 투표를 이렇게 의미 깊은 선거로 시작해서 마음이 뿌듯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며 "거의 빠짐없이 친구들과 광화문에 나갔는데 그 모든 날들이 오늘 '대선'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더 책임감이 드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어 "함께 광화문에 나갔던 친구들 중에서는 저처럼 주소 이전을 안해서 부산까지 내려 간 친구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투표를 해야 한다는 열망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친 양 씨는 오랜만에 조우한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영화 '특별시민'을 관람하러 발길을 돌렸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는 유권자 장영은(24·여) 씨는 가족끼리 함께 간 여행 일정을 일부러 단축까지 해서 투표에 참여했다. 물론 가족들도 한 마음, 한 뜻이었다고.
장 씨는 "이번 국정농단 사건부터 탄핵까지 일련의 일을 겪고 나서,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 그리고 우리 가족에 대해 후회를 많이 했다. 정치에 대한 환멸과 무관심이 결국 나쁜 지도자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선거권을 가지지 못한 10대 청소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대선만큼은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나이 때문에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친구들과 놀러 나온 고등학교 2학년 송지원(18·남) 군은 "촛불집회도 학교 친구들이나 가족과 여러 번 갔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민주주의가 아닌 진짜 국민들이 만들어 낸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깨닫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소년도 의식이 있는 이 나라 국민이다. 특히 교육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
의견이 많이 반영돼야 한다고 본다. 일본은 투표 연령이 만 18세 이상으로 낮아졌다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