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 ‘뷰티풀(Beautiful)’은 제목 그대로 ‘아름다움’을 주제로 했다.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었다”는 이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오후, 손때 묻은 낡은 물건들과 같은, 너무 가까이에 있어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에 주목했다. 어느덧 데뷔 10년 차, 30대 중반의 나이가 된 두 사람은 한 발짝 물러나 더 넓은 시야와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봤다.
정성스럽게 빚어낸 11곡(보너스 트랙까지 포함하면 13곡)으로 꽉 채운 신보를 내놓은 노리플라이와 소속사 해피로봇레코드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권순관(이하 권) : 워낙 대곡들이 많다 보니 헤매기도 했고, 중간중간 몸이 아프기도 했다. 그래도 작업은 꾸준히 했다. (정)욱재와 내가 각각 2~30곡을 만든 뒤 앨범에 수록할 곡을 선별하는 과정도 꽤 오래 걸렸다. 선별 작업을 작년 봄에 끝낸 뒤부터 녹음에 들어갔다. 앨범 작업만 3년이 소요됐다.
정욱재(이하 정) : 쉬고 싶어서 쉰 게 아니다. (웃음). 앨범 작업 과정이 오래 걸린 것도 있지만, 내가 2013년에뒤늦게 군 대체복무를 시작한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앨범명을 ‘뷰티풀’로 정한 이유가 있나.
권 : 단순한 사랑, 이별 노래가 아닌 이 시대를 대변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자 했고, 가까이 있기에 자칫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1번 트랙 ‘뷰티풀’이 주된 주제와 맞닿아 있다. 당신 없이는 아름다운 하늘, 바다, 별 등을 아름답게 볼 수 없다는 내용이다. 7번 트랙 ‘곁에 있어’에서는 가족에 대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도 했고. 또 어려웠던 시절, 아무것도 볼 수 없던 시절, 돌아보면 그것조차 아름다운 시절 등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했다.
정 : ‘아름다움’을 주제로 잡은 건 3년 전이다. 팍팍한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고, 음악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끔 하고 싶었다.
-30대가 된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겠다.
권 : 2집 ‘드림’이 2010년에 나왔다. 그땐 한창 꿈을 좇고,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시기였다. 지금은 꿈을 이루기에 앞서 좀 더 단단해지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20대는 붕 떠 있는 느낌이었고, 지금은 땅에 발을 디딘 느낌이랄까. 시야 자체가 바뀐 것 같다.
정 : 20대 때는 불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그때그때 느낀 경험을 음악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긴 그림을 볼 수는 없었다. 바쁘기도 했고, 심지어 군대도 가야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조금 더 멀리, 깊게 세상을 보려 하고, 음악도 긴 호흡을 가지고 만들려고 한다.
-타이틀곡 ‘집을 향하던 길에’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권 : 이별하고 난 뒤 집으로 향하던 길에 펑펑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너무 울다 지쳐서 놀이터 벤치에 한 시간 정도 울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가사를 썼다. 사실 원래 앨범에서 빼려고 했던 곡이다. 4년 전에 쓴 곡이라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가늠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곡을 들어본 회사 식구들과 주변 지인들이 ‘왜 빼려고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더라. 특히 김동률 선배는 ‘다른 걸 다 떠나 기억에 남는다’며 타이틀곡으로 하라고 적극 추천해주셨다. (웃음).
-4월 8~9일 LG아트홀에서 새 앨범 발매기념 공연을 열었다고.
권 : 22인조 오케스트와 함께한 공연이었다. LG아트홀이 워낙 격이 높은 무대이다 보니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모두 집중력 있게 잘 해줬다. 덕분에 감동적인 무대가 연출됐다는 생각이다. 팬들 역시 그간 노리플라이 공연 중 가장 좋았다는 반응을 보이더라.
정 : 신곡을 완벽히 숙지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공연 전날 몸이 좋지 않아 응급실에 가기도 했는데, 무사히 마쳐서 천만다행이다.
권 : 하하. 줄여서 ‘뮤 뮤’라고 부르는 분도 있더라.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확실히 느끼시는 것 같다. 우리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작업하는지를 말이다. 마치 셰프들이 음식을 맛보고 좋은 재료를 썼구나 하고 느끼는 것처럼.
정 : 음악 하는 분들에게 인정받을 때 굉장한 뿌듯함을 느낀다. 같은 업계 종사자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분야를 막론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잖아. 이번 공연에도 정준일, 박원, 장윤주, 이하나 씨 등 셀럽 분들이 찾아와 응원해주셨다.
-이번 앨범, 어떻게 들어야 더 좋을까.
권 :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들으면 좋을 것 같다. 더 주의 깊게 듣고 싶으시면 진짜 한가할 때 차 한 잔 마시며 듣는 것도 좋겠다.
정 : 1번부터 11번 트랙까지 한 번에 쭉 듣는 게 가장 좋다. 적당한 볼륨으로. (웃음).
-어느덧 올해 데뷔 10년 차가 됐다.
권 : 10년간 활발하게 곡을 발표하지 못해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그래도 사람들이 저희 음악을 좋아해주고 공감해주는 것 자체로 감사한 일이기에 ‘감사한 10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정 : 부담도 느낀다. 팬들은 물론이고 선, 후배 뮤지션들의 기대를 충족할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좋은 자극제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부담감이 없으면 게을러지기 마련이니까.
-홍대씬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겠다.
권 : 10년 전만 해도 황무지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같은 팀은 아주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야 했고. 또 예전에는 깊게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팀이 많았다면, 요즘은 캐주얼하고 가벼운 친 대중적인 음악이 많아진 것 같다.
정 : 무엇보다 음악을 잘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앞으로도 스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를 꿈꾸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앞으로의 10년에 대해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권 : 일단 당장 다음 앨범은 좀 더 단순하고 가벼워졌으면 한다. 그 단순함 속에 깊이가 묻어나도록 하는 게 1차적인 목표다. 장기적인 목표는 앞으로도 듣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같이 걷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뮤지션으로 성장해나가고 싶다.
정 :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할 때 선배들의 음악을 듣고 대답을 얻고, 힘을 얻었다. 정답을 제시할 순 없겠지만, 청춘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팀이 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