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얼굴들'은 갑작스레 공장을 이전하면서 해고 통보를 받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다. 대부분 기혼자여서 아이가 있는 '엄마'였던 이들은, 냉정한 자본과 싸우는 것만큼이나 남편과 자녀, 시부모 등 가족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남성들이 중심이 된 투쟁에서 아내가 뒷바라지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과 달리, '아내들'의 투쟁은 남편의 '허락'이 선행되어야 했다. 삭발, 단식, 한강 철교 오르기, 천막농성 등 긴 투쟁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따뜻한 밥'은 한전의료재단 한일병원에서 환자식의 조리·배식을 담당하던 여성노동자 19명이 일시해직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적게는 2년, 많게는 30년 동안 묵묵히 일해 온 이들은 단지 민주노조를 만들어 마땅한 자신의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잘리고, 병원과 용역업체를 상대로 천막농성과 집회를 진행한다.
영화 상영 후, '얼굴들'에 나오는 금속노조 시그네틱스 윤민례 분회장과 '따뜻한 밥'을 만든 박지선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 나섰다. 진행은 '외박', '산다' 등을 제작한 김미례 감독이 맡았다.
◇ 영화 제작 후 11년, 시그네틱스 노조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2001년 처음 발생한 '해고'는 지난해 9월 3번째 해고로까지 이어졌다. 영풍 자본과의 싸움은 법정 소송으로 번졌고,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일부 인원이 복직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인원은 9명이다. 이들이 외치는 것은 변함없다. 해고 철회와 파주공장으로의 복귀다.
윤 분회장은 "노동조합을 해 보니 내 삶도 지켜주고 나의 일자리도 지켜주고 세상을 바로보는 눈을 알려줬다"며 "(우리가) 파주(공장)에 가면 노조 만들 걸 아니까 못 가게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영풍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리를 없애려고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우린 여전히 금속노조 깃발 아래 있다. 지금은 9명이 움직이지만 고맙다"며 "어렵지만 투쟁 승리해서 현장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윤 분회장은 "저희 영상 찍을 때까지 제가 주인공인 줄 몰랐다"며 "(투쟁을 통해) 내가 노동자라는 것을 알았고, 여성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정말 힘들고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들의 격려 받으면서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많은 시간이 흘렀고 시그네틱스 조합원 숫자가 줄어서인지 (회사가 저희를) 더 얕보는 것 같다"면서도 "작은 곳에서 약하게 투쟁하고 있지만 개돼지 되지 않도록,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해 박수를 받았다.
◇ 환자의 건강권과 식당노동자의 노동권은 연결돼 있다
박 감독은 "26일차 됐을 때부터 찍었다. 조금 더 일찍 갔더라면, 정말 처음 조직하셨을 때부터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며 "이런 투쟁현장을 가는 게 처음이라 저 개인적으로는 많은 공부가 됐고, 어머님들을 만나게 된 것도 제게 되게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은 100일 넘게 병원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면서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했고, 우여곡절 끝에 교섭의 자리를 얻어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복직은 투쟁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당시 천막농성부터 같이 했던 한옥선 어머니는 "복직 후에 차별대우 안한다고는 했지만, 못 견딜 정도로는 안 해도 은근슬쩍 했다. '네가 이거 못 견디면 나가라' 하는 식으로"라며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정신적 피해보상 이런 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투쟁의 과정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를 담지 못한 게 있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 급식 문제는 병원장에게 책임이 있다. 투쟁할 때도 얘기했던 게 환자 식사는 치료행위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환자 식사의 질이 떨어지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용역업체들은 이윤을 남겨야 하니까 어머님들 수당도 다 떼먹었다. (병원은)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어머님들이 병원 직원(직고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종을 안해주기도 했다. 배식을 하면서 환자와 맞닥뜨리는 입장에서 병 옮길 수도 있는 것이고, 누구나 병원에 입원하면 환자식을 먹지 않나. 환자의 건강권과 노동자의 노동권이 다른 문제가 아니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