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가 사랑하는 다르덴 형제의 신작 '언노운 걸'은 이들이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스릴러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보통 범죄물에서 남성이 주도적으로 '범인 찾기'에 매달리는 공식이 되풀이되는 반면, '언노운 걸'은 여성인 주인공이 나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피해자의 이름'을 찾기 위해 분투한다는 점도 차별점이다.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CGV에서 영화 저널리스트 이은선 기자의 진행 아래 '김영하 작가와 함께하는 언노운 걸 시네마 톡' 행사가 열렸다.
김 작가는 "보통 범죄물은 범인을 찾는데, 그게 아니라 피해자의 이름을 찾는다는 점이 굉장히 특이했다. 여성 의사가 탐정이 된다는 점도 남성 중심의 범죄물과 달라 이채롭다고 봤다"고 영화를 본 소감을 전했다.
김 작가는 '언노운 걸'이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져 왔던 '아주 오래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인간이 어떤 실수와 사소한 선택을 하고 그것 때문에 굉장한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이라며 "그러니까 우리에게 '운명 앞에 겸허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해 파국의 결과가 왔을 때 우리는 이것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고,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거창한 세팅을 하지 않고도 이런 질문을 긴박감 있게 끌고 오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전적 주제를 가져온다는 것이 작가로서 부럽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언노운 걸'이라는 제목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잘 포착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영화 속 제니 다뱅의) 투쟁은 단순히 가해자를 잡아서 처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피해자에게 이름을 부여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피해자에게 적절한 예의를 차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름을 가질 수 없다는 건 이 사회의 타자이자 '배제된 자'라는 의미다. (영화의 배경이 된) 벨기에는 불법 이민자, 즉 서류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이름을 찾아주기 위한 '언노운 걸'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주제를 굉장히 잘 포착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제니 다뱅을 보며 몰입 안 되는 부분이 있지 않았나. 너무 위험해 보였다. 여성이 저렇게 위협을 받으면서도 수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며 "여성 의사가 사건을 푸는 것으로 갔다면 '설득력이 없다', '말이 안 된다', '(여자) 누가 이걸 하냐' 하는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영화 속에서는) 누가 이 여성을 때리진 않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어려서부터 (물리적·언어적) 위협을 크게 당하지 않았던 문명 문화권에서 (자라난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성이 받고 있는 위협의 정도가 다른 것 같다"면서 "한국 여성을 주인공으로 해서 쓰면 아마 중간에 포기하거나, 남성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관객이 다르덴 형제 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보다 선한 인물로 나오고 남성 캐릭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질문하자, 김 작가는 "리얼리즘 아닐까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 작가는 "저만 해도 여성에게 공격받은 적이 거의 없고, 어떤 여성도 저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범죄율만 봐도 폭력 등 강력범죄에서 남자가 굉장히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공감능력이 발달해서 의외로 어떤 투쟁을 시작하면 굉장히 오래하는 편이다. 밀양 송전탑, 사드 배치 성주 투쟁에서도 할머니들이 오래 남으시더라. 세월호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이나 소녀상 지키는 분들도. 처음 발을 들이기가 어렵지 오랜 투쟁을 하시더라"라고 전했다.
여성 의사 제니 베닝이 한 흑인 소녀의 '지워진 이름'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영화 '언노운 걸'은 내달 3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