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종목의 설움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의 노력이 이제야 결실을 맺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확보한 데 이어 ‘꿈의 무대’로만 여겨졌던 ‘아이스하키 1부리그’ 월드 챔피언십 진출도 유력한 상황이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선전은 분명 전 세계 아이스하키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진행중인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 대회에서 폴란드(20위)와 카자흐스탄(16위), 헝가리(19위)를 연파하며 대회 출전 사상 최고 성적을 불과 3경기 만에 달성했다. 28일 오스트리아, 29일 우크라이나와 경기에서 승점 2점만 추가하면 한국 아이스하키 역사상 최초의 월드 챔피언십 승격을 확정한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22명의 아이스하키 대표팀 가운데 귀화 선수는 주전 골리 맷 달튼을 비롯해 수비 알렉스 플란트, 에릭 리건(이상 안양 한라), 브라이언 영, 공격수 마이클 스위프트(이상 하이원)까지 5명이다. 이들 외에도 부상으로 대회 출전이 무산된 마이크 테스트위드와 ‘귀화 1호’ 브락 라던스키(이상 안양 한라)도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무대에 나섰던 ‘한국인’이다.
아이스하키는 다국적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세계 최강 캐나다와 미국의 우수한 자원이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국적을 얻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한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한국도 지난 2013년부터 라던스키를 시작으로 영, 스위프트, 테스트위드, 달튼, 리건, 플란트가 차례로 특별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들의 가세 효과는 분명했다. 특히 ‘아이스하키 전력의 절반’이라는 평가를 받는 골리 포지션에서 달튼이 든든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공격과 수비에서 활약하는 귀화 선수들의 합류로 기존의 국내 선수들과 시너지 효과가 최근 수년간의 가파른 순위 상승은 물론, 월드 챔피언십까지 노려볼 만한 전력의 완성을 이뤘다는 평가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무서운 성장은 ‘벽안의 태극전사’의 역할만 컸던 것은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 3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국은 12골을 넣었다. 이 가운데 10골을 토종 선수가 기록했다. 김기성이 3경기 연속 골 맛을 봤고, 신상우, 신상훈 형제도 나란히 2골씩 기록했다. 김기성의 동생인 김상욱도 이영준, 안진휘와 함께 1골을 넣었다.
김기성과 김상욱은 한국 아이스하키 통산 포인트 1, 2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간판 공격수다. 한국 아이스하키가 무수한 공을 들여 키운 신상훈은 지난 헝가리와 경기에서 빠른 스피드와 개인기를 살린 득점으로 세계 아이스하키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전력 면에서 귀화 선수의 공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대표팀의 대다수이자 전력의 중심은 국내 선수다. 이들의 시너지 효과가 전 세계 아이스하키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현재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지휘봉은 백지선 감독이 잡고 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무대를 누빈 주인공이다. 백지선 감독은 지난 2014년 대표팀 총괄 디렉터 겸 남자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한국 아이스하키 전반의 성장을 지휘하고 있다.
백지선 감독뿐 아니라 NHL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박용수 코치도 조국의 아이스하키 발전에 헌신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무대를 누볐던 선배가 이제는 후배들의 세계 무대 진출을 이끄는 모습이다. 선수들도 우상이었던 두 선배의 합류 덕에 분명한 자신감을 얻었다. 세계적 수준을 직접 경험한 두 선배의 도움이 한국 아이스하키의 성장에 분명한 자양분이다.
백지선 감독은 ‘높은 벽’으로만 여겨졌던 강호들과 대결에서도 당당히 맞서라는 주문을 아끼지 않는다. 세계적인 강호에 비해 분명하게 열세인 체격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적 강점인 스피드를 최대한 활용한 백지선 감독과 한국 아이스하키의 ‘위대한 도전’은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