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오는 18일 정당별 대선 선거보조금 63억 원을 받은 뒤 후보를 사퇴시키고, 다른 정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미여서 '후보 팔아먹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구 "대선 직전 의원총회 열어 사퇴요구 할 수 있어"
바른정당 이종구 정책위의장(중앙선대위 부위원장)은 16일 기자들과 만나 바른정당 의원들 다수가 투표지 인쇄시점 직전인 오는 29일께 의원총회를 열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의총에서) 사퇴를 건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지율을 주시하다가 당선 가능성이 낮아 보이면 후보직 사퇴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앞서 바른정당 의원 20여 명은 지난 14일 비공개 조찬회동을 갖고 후보직 사퇴, 단일화 가능성 등을 놓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였던 이 정책위의장의 발언은 당시 모임의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당 일각에서 거론되는 ‘대선 직전 후보직 사퇴’는 결국 국가에서 지급하는 선거보조금 수십억 원은 챙기고, 선거 가능성이 높은 쪽에 줄을 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유 후보가 15일 대선후보로 등록함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18일 바른정당에 63억 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후 후보직을 내려놓아도 당은 규정 상 반환 의무가 없다. 지난 18대 대선에서도 이정희 후보가 선거 직전 사퇴하고, 지급받은 27억 원은 반환하지 않으면서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보조금 먹튀’ 논란이 일었다.
이 문제를 제기한 쪽은 당시 바른정당 의원들이 소속돼 있던 새누리당이다. 똑같은 논란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정책위의장은 “당시 통합진보당은 사용처 등을 세세하게 밝히지 않아서 논란이 일었던 것”이라고 답했다. 선거보조금은 당 운영비로도 쓰일 수 있으며, 투명하게 사용하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것이다.
◇명분은 ‘당과 나라의 미래’, 속내는 ‘제 살길 찾기’
하지만 사퇴론을 언급하는 의원들의 속내에는 개인적 위기감도 짙게 깔려있다. 유 후보는 개혁보수의 기수로서 낙선 시에도 정치적 미래가 있지만, 나머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진 의원도 “지지율 답보상황이 이어지면 당 차원에서 용단을 내려야 한다”며 “후보만 믿고 갈 수 있는게 아니잖느냐”고 했다.
이들 사이에서 유 후보의 ‘대체 후보’로 비중 있게 거론되는 인물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다. 특히 이 정책위의장은 유 후보의 후보직 유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안 후보에게 지지선언을 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 후보가 소수정당 후보로서 집권 능력을 의심 받는 만큼, 자유한국당 비박계와 바른정당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힘을 실어주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바른정당에서 탈당을 하지 않은 채 다른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대선은 위너 테익스 올(승자독식)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폭탄발언’에 유승민 측 강력 반발…"후보 흔들기"
공식 선거운동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나온 당 지도부 인사의 ‘폭탄 발언’으로 유 후보 캠프는 하루 종일 뒤숭숭했다.
이 정책위의장은 논란 진화를 위해 “전적으로 개인의견”이라며 단체 메시지를 돌렸지만, 의원들의 단체 조찬회동 이틀 후 나온 발언이어서 파장이 커지는 모양새다. 해당 모임의 간사는 김무성 선대위원장의 최측근인 김학용 의원으로 파악돼 유 후보 측에서는 김 위원장을 해임하는 문제까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 후보 측 지상욱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사퇴 운운은 후보를 흔들기 위한 불순한 의도”라며 “유 후보는 아무리 외롭고 험한 가시밭길이라도 국민 여러분만 보고 의연하게 용감하게 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 대변인은 "정치인 이전에 기본이 안 된 행동"이라는 수위 높은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 정책위의장의 발언을 해당행위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언론인들이 그렇게 본다면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답해 그에 대한 징계 논의가 이뤄질 지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