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자식 잃은 부모 물어뜯는 저들은 누구인가
①-ⓑ 왜 우리는 한때 "세월호 지겹다" 외면했을까
② "우린 침묵하면 모두 함께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겪었다"
<계속>
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 그들을 지지하는 단체와 시민들은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순수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많은 언론은 정부가 짜 놓은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보도를 함으로써, 혹은 무관심과 방조를 통해 이 비극을 지워갔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언제나 존재했다.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였다.
연극인들은 세월호 유가족들과 수백 만의 시민들이 동참한 '수사권·기소권을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 목소리 냈고, '세월호'를 주제로 한 공연도 속속 등장했다.
드라마 작가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모티프를 얻어 작품을 썼다. 선박 사고는 아니지만 다른 '사고'의 형태로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설정이 나오거나, 드라마 속 대사로 표현된 경우도 있었다.
◇ 참사 '잊지 않은' 공연계, 매년 '세월호'를 무대에 올리다
1주기 때부터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극이 쉬지 않고 등장했다. 대학로에서 활동 중인 60대 연출가들은 '비가 내리면'과 '완자무늬'라는 극을 준비했다.
'비가 내리면'은 화장실에 갇힌 남학생, 여학생, 선생님은 구조를 요청하지만 물은 계속 차오르기만 하고 취재진의 소리만 중계하듯 들려오는 내용이다. '완자무늬'는 2014년 한 해 동안 벌어진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과 우리 기억 속에 점점 잊혀져가는 것들을 주제로 했다.
원래 2011년 1월 호주에서 일어난 대홍수로 실종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델루즈: 물의 기억'은 1주기를 맞아 세월호 추모극으로 재탄생했다. 연출가 제레미 나이덱은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되돌아보고 그 비극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라고 밝혔다.
혜화동1번지 6기동인은 아예 2015년 8월 한 달을 통째로 '세월호'란 주제에 할애했다. 그날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다양한 개인들의 말들을 수집한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 2014년 안산의 아픔을 소소한 웃음과 감동으로 담아낸 '별망엄마', 그날을 이야기하고 애도하는 작품 '오늘의 4월 16일, 2015. 8' 등이다.
2주기에는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한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그녀를 말해요'가 무대에 올랐다. 평범하게 자라온 아이에 초점을 맞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하나의 세계'가 얼마나 거대한 시간을 품고 있는지를 돌아봤다.
3주기를 맞은 올해도 잊을 수 없는 4월 16일을 표현한 극은 계속된다. 군포문화재단은 죽은 아이가 살아돌아오면서 권력의 실체와 죽음의 전모가 밝혀지는 과정을 그린 '볕드는 집'을 3주기 추모연극으로 공연한다.
안산에서도 30년 전 딸을 잃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는 삼신할매와 저승사자의 이야기 '꽃신'과 바다로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이야기 '별망엄마' 등을 통해 세 번째 봄을 기록할 예정이다.
◇ 대사로, 모티프로, 노란 리본으로… 드라마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
드라마 '앵그리맘'(2015)은 표면적으로는 딸이 다니는 학교의 비리를 스스로 밝혀내고자 학교로 간 엄마의 이야기로만 보인다. 하지만 극의 배경이 되는 명성고의 존재 자체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대한민국의 은유다. 금이 가고 물이 새다 결국 무너져내린 명성고 별관 붕괴사고가 말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하나의 사건 혹은 사고인 줄만 알았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비리가 얽혀 있었다는 흐름이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만난 방식과 유사하다. 시놉시스 초안에는 "속수무책 304명의 아이들을 수장시키고 만 부끄러운 어른들의 세상. 엄마들이 화났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도 했다.
단막극 '가만히 있으라'(2015)는 제목에서부터 세월호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김종연 감독은 소재도, 전달할 시사점도 세월호 참사와는 관련이 없지만 극의 모티프가 된 것은 사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착하게 열심히 살면 행복이 올 것이라 믿는 소시민 가족의 이야기는, 대다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던 세월호 유가족·미수습자 가족들을 연상시킨다.
아동 폭행 누명을 입은 이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조들호가 한 말은 묵직하게 마음을 울린다. "우린 불과 몇 년 전 침묵을 하면 모두 함께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겪었습니다.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침묵하는 여러분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침묵은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미씽나인'(2017)은 비행기 추락사고의 진실을 찾는다는 큰 줄기와 '사라진 9명'(세월호 미수습자 수와 같다)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세월호 참사와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평이 나왔던 작품이다. 45일 만에 수색작업을 종료해 버리는 등 사건을 빨리 덮으려고 하는 기성 권력의 행태나 "질질 짜지 말고 돈이나 쳐 버세요"라는 대사는 세월호 참사를 직접 목격해 온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솔로몬의 위증'(2017)은 기획의도에서부터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의 '진실 찾기'라는 주제를 드러냈다. 제작발표회 때 강일수 감독은 "('가만히 있으라'는) 그 말 자체가 세월호의 아픔과 같이 가고 있고, 저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떤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작품을 선택하고 작품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무관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펌 태백을 배경으로 적에서 동지로, 연인으로 발전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귓속말'(2017)에서는 "기다려라. 가만히 있어라. 그 말 들었던 아이들은 아직도 하늘에서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겠죠"라는 대사로 다시 한 번 세월호 참사를 수면 위로 올렸다.
조선 연산군 시절 실존 인물이었던 홍길동의 일대기를 담은 '역적'(2017)에서는 최근 지푸라기로 만든 노란 리본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극중 땅을 뺏겨 좀도둑이 된 용개(이준혁 분)의 두건에 자리잡았던 노란 리본. 이준혁 소속사 관계자는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추모의 뜻을 전하기 위해 한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