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보호' 아닌, 저작권해외'진흥'협회일까?

[노컷 인터뷰] 권정혁 레진엔터테인먼트 부사장

권정혁 레진엔터테인먼트 부사장.(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초등학생이었던 1990년도. 당시 화제의 만화 [드래곤볼]을 500원을 주고 사서 봤다. 소위 ‘해적판’으로 불리는 불법 유통물이었다.

한 만화 출판사를 통해 정식 발매되는 것도 있었지만, 연재 속도가 느렸다. 해적판과 정식 발매의 개념도 몰랐고, 다음 편을 빨리 보고 싶다는 욕구가 해적판으로 손이 가게 했다.

다음 편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건 좋았다. 문제는 해적판의 질. 틀린 이름, 이해할 수 없는 대사, 찌그러진 그림, 어두운 배경 등.

그때는 ‘작가가 배가 불러서 게을러졌나, 그림을 대충 그리네’라고 생각했다. 어렸기에 몰랐다, 문제는 작가가 아니라 불법으로 해적판을 유통하는 ‘그들’이었음을.

한국 콘텐츠의 질이 나날이 높아지면서,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큰 인기이다. 영화, 방송, 드라마, 음악, 만화 등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으로 퍼진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한류 콘텐츠는 지금 불법 복제물에 의해 몸살을 앓고 있다. 인터넷 시대인 만큼 웹콘텐츠에 대한 불법 복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달 22일 저작권해외진흥협회(COA, Copyright Overseas promotion Associatio)가 공식 출범했다.


레진엔터테인먼트, 네이버, KBS, MBC, SBS 등 15개 민간 콘텐츠 제작사가 참여해, 해외에서 불법 유통되는 국내 콘텐츠 침해에 대해 대응하며 피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이 묘하다. 저작권해외‘보호’협회가 아니라 ‘진흥’협회다. 협회장을 맡은 권정혁 레진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을 만났다.

권정혁 레진엔터테인먼트 부사장.(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닌 민간 회사들이 모여 협회를 만들었다.
= 불법 복제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웹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위협은 더 커졌다. 기존 대응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해외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복제되는지 파악도 어렵고, 이를 회사들이 개별적으로 진행하면, 중복으로 인한 비용 손실도 많았다. 이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만 요구하기에는 한계도 있고,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그래서 민간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우리 저작권을 보호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렇게 15개 회사가 모였다.

▶ 해외 역시 민간 주도인가.
= 대표적인 예로 일본은 CODA, 미국은 콘텐츠별로 MPA, BSA가 있다. MPA는 파라마운트, 월트디즈니 등 영화사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영화 콘테츠 침해를 보호한다. BSA는 마이크로소프트 등 소프트웨어사의 연합이다. 불법 소프트웨어 차단 활동을 한다.

▶ 불법 복제 콘텐츠로 인한 피해액이 대략 어느 정도인가.
= 현재로서는 산정하기 어렵다. 협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국가별로 침해 현황을 조사하는 것이다. 그래야 대응 전략을 짤 수 있다. 레진코믹스만 따지면 피해액이 단순 수치로 수백억 단위로 추정한다.

▶ 협회 이름이 해외저작권'진흥'협회이다. '보호'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 피해도 피해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외서 불법 복제된 한국 콘텐츠가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피해 규모를 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레진코믹스의 경우 해외 진출을 위해 번역에 공을 들인다. 네이티브가 읽기 좋게 번역하고, 활자 작업도 한다. 질 낮은 불법 콘텐츠 때문에, 콘텐츠 자체에 대한 흥미도가 떨어진다면, 이것은 규모를 산정하지 못할 정도로 큰 피해가 된다.

‘보호’가 목적이라면 DRM(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과 서비스) 같은 방식을 통해 사전에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용자를 불편하게 하는 방식이다. 나는 불법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라고 생각지 않는다. 정식 경로로 보기가 어려운 탓이다. 결제가 힘들거나,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기 때문인 게 컸다고 본다.

때문에 우리는 사용자들이 불법·저질이 아닌 합법·양질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경로를 알려주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것이 불법 콘텐츠를 막는 가장 좋은 예방책이라고 본다.

권정혁 레진엔터테인먼트 부사장.(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 그렇다면 협회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게 되나.
= 먼저 글로벌 모니터링 대행사를 선정해 운영한다. 대행사가 국가별 어떤 콘텐츠가 얼마나 어떠한 방식으로 불법 복제되는지 파악할 것이다. 이후 그에 따라 대응 전략을 짤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 등의 협력을 통해 MPA, CODA와 같은 해외 유관기관과도 협력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또 기존의 차단 방식에 대한 제도적 정비도 요구할 것이다. 지금은 ISP(KT, SK브로드밴드 등 회선 사업자)를 통해 불법 해적 사이트의 URL을 차단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차단까지 4~6주 정도 걸린다. 너무 늦다. ISP에서는 힘들다고 하는데, 이를 개선하는 것은 소통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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