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관련 발언 이후 쏟아지는 문재인 후보 측과 민주당의 공격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특유의 미소로 여유롭게 받아친 한 마디였다.
청춘 멘토, 벤처 사업가, 교수 등 여러 분야에 이름을 떨쳤던 그는 이제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가 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상대하게 됐다.
서울시장 후보와 2012년 야권 대선후보 자리를 양보해 '간철수'라는 오명까지 얻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안 후보는 '자강론'을 토대로 문재인 대항마로 거듭났다.
◇ 소설보다 잔인한 비극 마주한 소년, 공생(共生)을 생각하다
의대생이 된 청년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소설 보다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손녀와 단둘이 살던 할머니가 손녀가 가출한 사이 굶어 숨진 것을 보고 안 후보는 "소설보다 잔인한 비극을 경험했고, 함께 살아가는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고 한다.
안 후보는 2005년 '한 사람의 영향력이 너무 크면 회사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며 청춘을 받쳤던 안랩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학생이 됐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배워서 남 주려고" 공부했다는 그는 2008년부터 카이스트, 서울대 등 국내 굴지의 대학에서 학생들과 배움을 나눴다.
◇ '청년 멘토'→'간철수', 퇴로 불사른 초보 정치인의 수난기
곧 '안철수 신드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50%가 넘는 지지율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안 교수는 당시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의원 안철수가 된 것이다. 얼마 뒤 김한길 전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해 공동대표까지 지냈지만 2014년 7월 재보선에서 당시 새누리당에 패배해 당대표직을 물러났다.
◇ '대신할 수 없는 미래', 문재인 대세론 꺾을까?
이후 안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2016년 2월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천정배 당시 무소속 의원과 공동대표를 지냈다.
안 의원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야권통합 제안, 수도권 연대 제안 등을 거부하며 독자노선을 걸은 끝에 '4.13 총선'에서 호남권 돌풍을 일으켰다. 호남권 의석을 싹쓸이 해 국민의당을 명실상부한 제3당으로 키워낸 것이다.
하지만 총선 과정에서 박선숙·김수민 의원 등이 리베이트 의혹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이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급등한 안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의 맞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3일 발표된 '내일신문-디오피니언 4월 정례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작년 6월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값 부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양자 가상대결에서 43.6%로 문 전 대표(36.4%)를 7.2% 포인트 차이로 앞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