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세월호 조타수의 양심고백…'C데크 천막'의 진실 ② '세월호 늑장구조' 해경 수사에 무슨 일 있었나? 계속 |
이 가운데 유병언 수사와 선장과 선원에 대한 수사는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유병언 일가 수사는 특히 요란하고 떠들썩했다. 검찰의 수사 브리핑은 친절했고 언론들은 받아쓰기하며 대서특필했다..
한 검사는 "돌아켜보면 당시 청와대와 법무부가 유병언이 세월호 사고의 모든 책임자인 것처럼 과도하게 몰아가는 바람에 박근혜 정부가 결국 '세월호 덫'에 빠진 것"이라고 일갈했다.
세월호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운명은 수레바퀴처럼 움직였다. 박 전대통령의 통치력에 대한 불신이 세월호 사고에서 싹텄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수사했던 특검의 고위 관계자는 "운명이 진실로 존재한다면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세월호 구조 실패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 "청와대·법무부…해경 123정장 과실치사죄 적용 집요하게 방해"
광주지검은 2014년 7월 29일 해경의 늑장구조와 관련 세월호 사고현장에 맨처음 도착했던 당시 김경일 해경 123정장을 긴급체포한다. 참사가 발생한 지 석달 보름 남짓 경과한 시점이다.
수사팀은 당연히 48시간 체포시한을 얼마 안남기고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을 법무부와 청와대에 보고했다.
하지만 청와대 압력을 받은 법무부는 과실치사죄 적용에 한사코 반대했다.
세월호 수사를 지휘한 변찬우 전 검사장(광주지검 검사장)은 "수사팀이 김 전 정장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자 법무부가 '청와대가 절대로 안된다고 반대한다'며 영장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말했다. 변 전 검사장은 이와관련 4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변 전 검사장은 "김 전 정장이 비록 말단 공무원이지만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하면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며 당시 법무부와 청와대가 막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법무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수사팀은 김 전 정장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죄를 뺀채 항해일지 조작 등 허위공문서 작성 위반 혐의로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해 8월 1일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해버렸다.
변 전 검사장은 "가장 중요한 업무상과실치사죄는 빼고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만 기재하니까 법원이 영장을 기각해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은 의기소침했다.
그럼에도 광주지검 수사팀과 대검 형사부는 호흡을 맞추며 과실치사죄 적용을 계속 주장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부당한 압력에 시간만 하염없이 흘렀다.
청와대 압력을 받은 법무부는 보강수사를 요구하며 수사팀 요구를 차단시켰다.
변찬우 전 검사장은 "당시 법무부는 '외국 판례를 더 조사해봐라' 등등 이런저런 요구를 하며 계속 보고서만 요구했고 수사 검사들의 체력과 인내가 한계상황에 도달했다'고 술회했다.
결국 9월 추석을 넘겨서까지 실랑이가 계속 됐다
변 전 검사장은 "추석 이후에도 영장청구를 요구했지만 법무부는 '추석도 다 끝났는데 국가 책임이라는 불씨를 왜 또 살리려 하냐'며 승인을 계속 미뤘다"고 말했다.
변 전 검사장은 더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했다. 당시 광주지검 수사팀은 폭발 일보 직전 상황에 도달했다. 그는 자신의 사퇴카드를 꺼내들었다.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검사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법무부에 최후통첩을 한 것이다.
변 전 검사장의 벼랑끝 전술에 법무부는 움찔했다. 검사장이 사표를 제출하면 수사팀 반발이 불가피하고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불과 한해 전 국정원 댓글사건에서 법무부 압력에 굴복한 검사들의 항명 사건이 있었다.
김 전 정장을 긴급체포하고 두달이 지난 2014년 10월 6일 수사팀은 김 전 정장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불구속 기소한다. 수사팀이 청와대와 법무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과실치사죄를 적용하는 대신 불구속 기소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해경의 늑장구조 수사에서 말단 책임자 한명을 구속하는데 두달이 넘게 걸린 것이다. 해경 수사 결과에 대해 결코 만족할 수 없지만, 청와대에 완전히 장악된 검찰 조직에서 당시 검사장과 일선 검사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해경 말단 책임자 한명을 불구속 기소하는데 두달 이상 걸렸지만, 검찰이 해경을 최초로 수사하려던 시점부터 따져보면 무려 5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광주지검은 선원들에 대한 수사를 합수부 주관으로 진행했다. 즉 해경과 함께 조사를 한 것이다.
검찰은 해경의 늑장구조 수사를 그해 4월말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당시 광주지검 형사2부장)을 중심으로 단독 수사팀을 꾸렸다.
그러나 해경 수사는 벽두부터 벽에 부딪쳤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늑장 구조 수사를 지연시킨 논리는 "해경이 당시 구조작업에 한참 참여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세월호 구조 당시 해경이 승객 전원을 구조할 수 있었는데 방치해 검찰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죄 적용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있었다"면서 "국민적 혼란을 야기하고 수색작업을 수행 중인 해경에 대한 크나 큰 불신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구조 실패 책임자가 파렴치하게 나타나 책임을 피하려는 돌발적 행동이었다. 청와대도 해경을 거들고 나섰다. 구조 책임 규명보다 구조에 몰입해야 할때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당시 해경은 구조 작업을 통제하는 바람에 오히려 민감 잠수사들의 반발을 샀다.
이런 상황이 되자 해경 늑장구조에 대한 검찰 수사는 중단되고 만다.
하지만 김석균 전 청장이 반발한지 불과 1주일이 지난 5월 1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담화문을 읽어내려가더니 해경 해체를 전격 선언해 버렸다.
박근혜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은 오로지 늑장구조에 대한 '7시간 의혹'과 국가 책임에 대한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
해경 해체 선언 뒤 검찰은 겨우 늑장구조에 대한 해경수사에 나섰다. 해경 서버 압수수색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해경 서버 압수수색도 검찰이 원한 시점에는 불발됐다.
6.4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둔다. 우여곡절 끝에 검찰은 다음날인 6월 5일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 와중에도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은 윤대진 수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수수색 방해 공작에 나선 사실이 드러나 특검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일선 지검의 부장검사급 수사팀장에게 직접 전화를 해 '압력'을 행사한 행위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