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스스로 더불어 사는 세상 꽃핀다"

[노컷 인터뷰] 이정수 서울도서관장 "도서관, 민주주의 '나눔' '평등' 실현되는 공간"

이정수 서울도서관장. 그는 "도서관은 민주시민을 기르는 장"이라며 "그 가치는 '스스로'와 '더불어'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진욱 기자)
"도서관은 민주시민을 기르는 장입니다. 시민들 스스로 도서관 운영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은 곧 남을 위한 배려예요. 책 반납일을 잘 지키는 것은 그 책을 기다리는 다음 사람을 위하는 일이고, 도서관 안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것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노력이잖아요. 각 도서관이 운영하는 동아리·자원봉사 활동 등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자치'를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도서관은 자연스레 '평등'과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 되는 거죠."

이정수(55) 서울도서관장은 "공공도서관의 가치는 '스스로'와 '더불어'에 있다"고 강조했다. "도서관에서 스스로 책을 찾아 공부하면서,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성장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도서관을 두고 '사회적 기억장치' '문화전승기관'이라고 말합니다. 역사적 사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올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의 장서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었겠죠. 이와 함께 중요한 가치가 '민주시민 교육의 장' '평생 교육의 장'이라는 데 있어요. 어릴 때부터 도서관을 잘 이용해 온 아이들은 자부심, 자긍심을 갖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면모를 다듬기 마련입니다. 학교 안에서 인정 받는 것과는 또 다른 재능을 키우는 거죠. 아이들을 위한 공공도서관 프로그램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 '유리천장' 실감해 온, 내 이름은 '일하는 여성'

서울 중구에 자리잡은 서울도서관. 이곳은 일제시대인 지난 1926년 들어선 이래 줄곧 행정청사로 쓰인, 100년 가까이 된 문화재(등록문화재 제52호)다. 바로 뒤편에 새 서울시청사가 들어서면서 지난 2012년 '서울도서관' 간판을 달고 다시 문을 열었다. (사진=서울도서관 제공)
최근 서울 중구에 있는 서울도서관에서 만난 이 관장은, 자신의 지난 삶을 통해 이러한 도서관의 가치를 체득한 인물로 다가왔다.

"대학 시절, 교생 실습 나가는 것처럼 문헌정보학 전공을 살려 공공도서관 현장 실습을 나간 적이 있어요. 그때는 재미가 없었죠. 당시 공공도서관은 권위적인 느낌이 강해서 '이 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거든요. 다른 쪽을 알아보다가 신문사에 들어가서 12년 정도 관련 일을 했고, 이후 대학에서 문헌정보학 시간강사로 7년 정도 보냈어요. 당시 제 자신이 소모 되는 것 같은 마음에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죠. 그런데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이진아기념도서관의 관장 모집 공고를 우연히 접했어요. 제가 서대문에서 학교도 다니면서 결혼 전까지 살았는데, 그 공고를 본 순간 눈이 번쩍했죠. (웃음)"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11년 반가량 있으면서 그곳을 전국에서 가장 잘 운영되는 도서관 가운데 하나로 빚어낸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도서관장 공모에 참가해 합격했고 지난 1월 2일자로 2대 관장직을 맡았다.


"한 번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에 지원했는데 다행히 합격했죠. 도서관 관련 직종에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아요. 어느 회의에 가 보면 참석자들이 모두 여성인 경우도 있죠. 저로서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전공을 살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참으로 행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전에도 훌륭한 여성 선배들이 많이 계셨지만, 사회적으로 여성 후배들에게 '저런 선배가 있었지'라고 보여 줄 수 있다는 점도 의미있는 것 같아요."

민주화를 향한 열망으로 들끓던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이 관장은 스스로를 "여성으로서 자각한 세대"라고 일컬으며 "여성 인권을 인식한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유리천장'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임신, 출산, 육아 등으로 중간에 자기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지적했다.

"사실 제가 신문사를 나와 7년간 학교 강의만 다니며 일을 쉰 이유도 개인적으로 육아, 교육 문제 등이 겹쳤기 때문이었죠. 그 뒤에 재취업을 한 셈인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렇게 일하는 제 모습이 후배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까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 "혐오와 적대, 도서관 이념과 거리 멀어"

서울도서관에서 토론을 벌이는 시민들(사진=서울도서관 제공)
이 관장은 "여성은 물론 장애인, 다문화가족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바라보는 잘못된 관점의 틀을 깨려면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바로 도서관 정신"이라고 역설했다.

"스스로 존중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법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점의 틀을 깨려면 모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이 필요해요. 그곳이 도서관이라고 믿어요. 여성과 남성, 피부색 등은 생물학적인 것일 뿐, 우리는 모두 서로 인정하고 같이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니까요. 서로를 적대하는 것은 도서관의 이념과도 거리가 멉니다."

이 관장의 이러한 사회 인식은 서울시내 도서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아 주는 '정책도서관'으로서 서울도서관의 운영에도 적절하게 반영되는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제가 부임한 첫날 송인서적 부도 사태가 터졌습니다. 오래 전부터 도서관이 작가, 출판사, 서점과 협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온 입장에서 심각하게 다가왔죠. 출판, 서점이 죽으면 도서관도 살 수 없는 구조니까요. 노출 기회가 많지 않은 중소 규모 출판사들의 책을 시민들이 도서관에서 효과적으로 접하도록 돕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낸 유명 작가 중심으로 운영되는 강연회 체계를 바꾸는 것도 서울도서관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시민들의 요구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에게 필요한 책을 권함으로써 삶이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정책도서관으로서 서울도서관이 '심장'이라면 시내 도서관·서점들은 '모세혈관'이에요. 심장인 서울도서관은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애쓰고, 각 자치구 도서관이 구석구석까지 피가 잘 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거죠. 그 일환으로 서울도서관은 올해 시내 도서관 14곳 건립을 위해 129억 원을 지원했어요. 우리가 정책을 만들어 뿌리면 그 틀 안에서 자치구마다 알아서 합니다. 자치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따로 또 같이'의 개념이죠. 장서 구입이나 프로그램 운영도 각 도서관이 모두 알아서 합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셈이죠. 이제 한국 사회에서 권위와 억압은 옛말이 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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