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논평] 여전히 '송구'하지 않은 朴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11일 만인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전투환, 노태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네 번째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 (사진=황진환 기자)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내놓은 육성은 이 두 문장이 전부였다. 취재진이 소리쳐 되물었지만 더 이상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국정을 농단해 파면 당한지 11일 만에 내놓은 직접적인 멘트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이 검찰청사 포토선상에 선 것은 그가 국민들에게 입장을 내놓을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은데 대해 진솔하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기를 많은 국민들은 기대했지만, 사죄와 용서는 역시 그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11일 만인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전투환, 노태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네 번째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 (사진=황진환 기자)
"송구하다"는 말은 "모든 것이 순수한 뜻"이었고 "선의"였다던 지난 해 세 차례 대국민담화 때마다 들어왔던 단어다. 여전히 국민에 송구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는 표현도 일반 형사 피의자들이 조사받으러 들어갈 때마다 하는 의례적인 말이다.

박 전 대통령에겐 오히려 삼성동 집 앞에서 측근을 통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며 드러낸 불복 의지가 여전히 읽혀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11일 만인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전투환, 노태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네 번째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 (사진=황진환 기자)
자정 전후까지 이어질 검찰 조사에서도 여전히 자신에게 적용된 14가지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에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는 대가로 출연금을 요구한 사실도 없고,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KT 등 민간기업 인사에 개입한 적도 없으며, 블랙리스트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게 분명하다.

박 전 대통령이 보여온 태도에 비춰볼 때 검찰에서 혐의를 모두 솔직하게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11일 만인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가 사활을 걸고 칠 방어막을 뚫는 것은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몫으로 검찰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대명제가 살아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소명의식을 갖고 수사해야 한다.

특히 박근혜 정권 우병우 전 수석 밑에서 실추될 대로 실추된 검찰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그렇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지난 해 검찰수사와 특검수사를 통해 충분히 확보했다는 얘기도 있고, 박 전 대통령 소환이 자백보다는 절차적 피의자 소명 청취 차원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11일 만인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핵심은 뇌물죄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 사이의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에 대해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검찰이 SK, 롯데 등에 대한 수사에도 집중하고 있는 점을 주목한다. 아울러 철저한 수사와 함께 뇌물죄 등 공소유지를 위한 법리적용 등에도 한치의 오차가 없어야 한다.

민감한 것은 박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인지 하는 문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관련자들이 모두 구속기소됐고, 사안이 중대하다는 점에서 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대선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해 불구속기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검찰 내부 기류도 복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제는 철저한 조사 뒤에 '법과 원칙'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대선에 미칠 영향이 없을 수 없겠지만 결과는 어차피 동전의 양면이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된 것 자체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데서 비롯된 일이고 검찰수사가 법치주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법과 원칙'에 따른 결정은 새삼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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