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질'과 '애원' 오간 최순실…朴 조사 앞두고 극도로 민감

법정 증언서 복잡한 심경 표출…삼성 지원은 모두 '증언 거부'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재판장님,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국가적 불행사태와 대통령 파면이라는 원죄를 국민들께 사죄드리고, 제가 살아가야할 이유도 모르겠지만 의혹을 밝히고자 사실 재판정에 (열심히) 나오고 있습니다.

조카인 장시호와 이렇게 있는 것도 어렵고 장시호 선처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4개월동안 외부 접견이 완전히 막혀서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겠고 딸(정유라)이 덴마크에 잡혀 있어 외부와의 소통(채널)을 하나라도 열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동계영재센터 지원의혹 사건과 관련 서울중앙지법에서 17일 열린 장시호 씨에 대한 8회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최순실 씨의 마무리 발언이다.


최 씨는 이날 오전 1시간 10여분, 오후에는 1시간 20여분 등 모두 3시간 30분동안 형사재판에서 처음으로 '피고인 자리'가 아닌 '증인 자리'에 앉아 증언을 했다.

장시호.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최 씨는 증언에서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자신의 처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뇌물죄를 다투는 삼성과 관련된 영재센터 지원에 대해선 아예 증언을 거부했고, 장시호 씨 변호인과의 증인 심문과정에서는 날카롭게 대립하며 시종 신경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최 씨의 변호인까지 개입해 조카 장 씨 변호인과 증인심문 문제를 두고 여러차례 논쟁을 벌이는 바람에 장 씨 변호인은 준비한 최 씨에 대한 증인심문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마무리해야 했다.

재판을 지켜본 검찰 측 한 인사는 "최 씨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것 같다"며 "아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를 앞두고 신경이 매우 날카롭게 곤두서있는 것 같다"고 분석 했다.

대통령에서 파면된 뒤 검찰 조사를 목전에 앞둔 박 전대통령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심리적으로 상당한 혼란과 불안을 가져다 주는 것 같았다.

◇ 삼성 지원은 모두 '증언 거부'

헌재 탄핵심판을 제외하면 최 씨는 형사 재판에선 처음으로 증인으로 나와 가장 많은 발언을 했다. 최 씨는 재판 내내 목소리가 크게 높지는 않았지만, 거칠고 상당히 신경질적인 톤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최 씨는 단 한 마디도 발음이 새지 않았고 단어가 엉키지도 않았다. 최 씨 주변인물들이 재판정에 나와 "최 씨가 무서웠다"고 증언한것 처럼, '비선실세' 최 씨의 권력이 한창이었을 때는 박 전 대통령도 제치고 발언했다는 '기세'를 느끼게 했다.

최 씨는 특히 검찰은 직권남용죄로 기소했지만 특검이 뇌물죄를 추가한 삼성관련 영재센터지원 부분은 모조리 증언을 거부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관여 부분에 대한 질문만 나오면 "거기서 왜 대통령 얘기가 나오냐, 자꾸 의혹으로 몰고가지 말라"고 거칠게 항의했다.

장시호 씨 변호인은 "2015년 10월 23일 밤에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이 대통령에게 영재센터 보고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대통령과 논의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최 씨는 "그런 일 없다. 왜 거기서 (박) 대통령 얘기가 나오나. 그런 얘기 하고 싶지 않다"라고 쏘아 붙였다.

검찰 측 증인심문에서도 최 씨의 삼성관련 증언 원칙은 철저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검찰 측이 삼성의 영재센터 지원과 관련 "최 씨가 김종 전 차관에게 후원 기업을 알아봐달라 했더니 삼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는가"라고 묻자, 최 씨는 "검찰이 자꾸 대통령을 끌고 들어간다. 증언 거부하겠다"며 입을 닫았다.

또 삼성이 두차례에 걸쳐 각각 5억 5000만 원과 11억여 원을 후원한 사실을 물은데 대해서도 "그건 잘 모른다. 형사문제이기 때문에 증언을 거부하고 싶다"고 말을 끊었다.

◇ 불리한 진술은 "기억 안 난다"…과거 측근들 수시로 인물평

최 씨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은 신경질을 부리며 "기억이 안 난다"거나 오히려 반박하는 투로 투박하게 대답했다.

"K스포츠재단의 자회사인 더블루케이가 독일의 한국지사라고 김종 전 차관에게 설명했냐"는 검찰 심문에 최 씨는 "기억이 안난다"고 철저하게 사실 인정을 감추려 했다.

또 김종 전 차관은 "최 씨 요청으로 GKL에서 영재센터 후원금을 내도록 했다"고 밝혔지만, 최 씨는 "김종 본인이 알아서 한 것이지 '내가 어떤 것도 억압해서 해달라'고 해서 한것은 없다"고 받아쳤다.

'지시' 얘기만 나오면 최 씨는 "요즘 (애들이) 제가 시킨다고 하나, 그렇게 몰고가면 안된다. 증거를 대고 얘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여 재판부가 두세 차례나 최 씨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최 씨는 증언과정에서 과거 직원들에 대한 인물평도 간간히 빼놓지 않았는데 K스포츠재단의 박헌영 과장에 대해서는 "걔는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 평했고 조성민 전 더블루케이 대표는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 씨가 국정농단의 주범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역설적인 증언들이었다.

최 씨는 증인심문 마지막 발언에서 덴마크에 억류돼 있는 딸에 대한 걱정을 나타내며 재판부에 접견금지 조치의 일부를 완화해줄 것을 애원했다.
(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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