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친밀한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 최소 82명"

한국여성의전화 보고서 발표… 이혼·결별 요구 거부했다는 이유 가장 많아

지난해 5월 21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진행된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집회'에서 한 여성이 '더 이상 여자라서 살해당하고 싶지 않아'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언론 보도 분석 결과, 2016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82명이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2016년에 발생한 사건만 집계)을 살펴본 '2016 분노의 게이지 분석보고서'를 15일 공개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언론 보도 분석을 위해 '아내', '부인', '전처', '동거녀', '내연녀', '여자친구', '애인', '여성/숨지게', '살해', '흉기' 등의 검색어를 사용했고, 그 결과 총 197건의 사건이 집계됐다. 배우자관계, 데이트관계뿐 아니라 상대방이 교제나 성적 요구를 하는 관계에서 벌어진 사건이 분석대상에 포함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편이나 애인, 동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최소 82명에 달했다. 피해 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 중 21명이 살해됐고 30명이 생명을 잃을 뻔했다. 살인미수로 그쳐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05명이었다.

가해자가 진술하는 범행동기는 △피해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한 경우(63명) △다툼 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경우(59명)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만났다고 의심한 경우(22명) 순으로 많았다. 폭력행위 고소에 대한 보복으로 범행이 일어난 경우는 7명이었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성별 고정관념에 입각해 피해자가 '여성성'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을 범행 이유로 들었다. 아내가 시댁에 가지 않거나, 자신보다 늦게 귀가한 것, 상추를 봉지째로 상에 놓은 것,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을 자신에 대한 '무시' 혹은 '비난'으로 받아들였다.

(표=2016 분노의 게이지 분석보고서)
언론 보도 상에서 가해자의 지속·반복적인 폭력이 언급된 경우는 32명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정폭력으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를 자녀 양육 및 면접교섭 빌미로 불러내어 감금하고 인두로 고문하는 등 중상을 입힌 사건, 살인미수로 실형을 받은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출소 후 피해자에게 재결합을 요구하며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또, 가정폭력으로 임시보호조치를 요청한 피해자의 가게를 찾아와 흉기를 휘두르고 불을 지르려고 한 사건, 잦은 폭행으로 동거하다 헤어진 피해여성의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설치한 뒤 미행해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사건, 촬영물 유포 및 살해 협박 등으로 헤어지자는 여성에게 만남을 요구하며 스토킹과 자살협박을 일삼다가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 데이트폭력으로 헤어진 여성을 납치하여 구타와 강간, 갈취,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한 사건도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는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만을 분석한 결과이기 때문에 실제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사건을 포함하면 혼인이나 교제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는 여성의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해자들의 진술에서 지극히 계획적이고 선별적이며 상습적인 폭력행위를 '사랑'이나 '생활고'에 따른 것으로 미화하거나, '홧김에'와 '술에 취해' 등의 표현으로 '우발적 행동'으로 축소하고자 하는 의도가 발견된다고 분석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우리 사회는 살인으로 이어지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에 대한 폭력에 여전히 무관심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깊숙이 스며있고 폭력을 통해 강화되는 성차별적 규범과 여성에 대한 혐오와 낙인의 문제를 여성살해의 핵심으로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전히 '사적이고 사소한 다툼'으로, '피해자의 잘못'으로, '홧김', '성충동' 등으로 인한 '우발적 범죄'로, 이도 안 되면 가해자를 '괴물'로 만들며 이해되고 소비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성폭력특별법 제정 23년, 가정폭력특별법 제정 20년, 성매매특별법 제정 13년, 여성발전기본법(현행 양성평등기본법) 제정 22년이 되었지만 법률상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정의조차 없고 여성폭력 관련 통계, 기본법, 정책 총괄기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을 문제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에 △여성폭력 범죄 실태를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계시스템을 구축할 것 △'불평등한 젠더질서에 기인한 성별화된 폭력'이라는 통합적인 시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바라보고 개입할 수 있도록 '여성폭력근절기본법(가칭)'을 제정할 것 △여성폭력 근절 및 성평등 실현을 위한 강력한 추진체계를 마련할 것 3가지를 요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2009년부터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 중 친밀한 관계(남편이나 애인 등)에 의한 여성살해 통계를 발표, 여성에 대한 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활동을 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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