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집회에 나온 청년은 왜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했나

"박정희로 상징되던 구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탄핵인용)된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박사모 등 친박단체가 모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주최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박근혜 파면 이후 첫 주말 친박단체 집회 현장에서, 한 청년이 군사독재 정권의 철폐된 유물인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는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였다.

11일 오후 7시쯤,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설치된 친박집회 무대에서는 사회자로부터 "2030 청년 아이콘"이라는 소개를 받고 등장한 이군로 씨가 연설 말미 '국민교육헌장'의 일부 내용을 활용하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여러분.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입니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길러야 합니다, 여러분."

집회 참가자들은 이 씨의 연설에 환호했고, 일부는 이 헌장의 나머지 부분을 자랑스러운 듯이 외우기도 했다.

앞서 이 씨는 연설 초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박근혜 파면 선고를 두고 "마음 같아서는 정말 다 때려부수고 싶다. 헌법재판소를 폭파시켜 버리고 싶다"며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끝까지 싸우자"고 선동했다.

'다음백과'에 따르면,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의적·전체주의적 교육 이념을 담은 헌장으로 지난 1968년 12월 5일 공포됐는데, 선포 당시부터 정치적 논란을 빚었다.


1960년대 말에서 1990년초, 초·중등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은 국민교육헌장 내용을 외워야 했다. 이 헌장은 한국 사회가 점차 민주화 하면서 1993년 초등학교 교과서와 정부 공식행사에서 사라졌다.

다음백과는 '이 헌장의 정치적 성격은 그 비판자들을 엄단한 데서 잘 드러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역사가 심용환은 이날 CBS노컷뉴스에 "국민교육헌장은 당대 닉슨독트린 이후 냉전이 완화되고 국제적으로 반공 이데올로기가 누그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박정희가 체제 내 결속을 다지고 장기 집권을 목표로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헌장이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국가주의적인 결속 강조지만, 실제 의도는 장기집권과 독재를 위한 명분 쌓기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친박집회에서 국민교육헌장이 등장한 것을 두고 심용환은 "박정희로 상징되던 구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자유한국당 등 우리 시대의 기득권층에서조차 (박정희·박근혜 체제로부터) 발을 빼려는 상황에서, 소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파산으로 인한 절망감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라며 "독재와 반공주의 안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밀착돼 있던 사람들이 파산 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구조의 근본적인 붕괴가 시작된 측면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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