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공연들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대체로 비슷하다. 천재들도 고난의 시간이 있었지만, ‘꿈을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고, 그러니 너희도 할 수 있어’라는, 마치 지오디의 노래 ‘촛불하나’ 같은 훈훈한 메시지 말이다.
그런데 공연은 다르다. ‘좌절→극복’이라는 흐름은 벗어나지 않지만,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는 마치 같은 재료를 가지고 다른 요리를 해내는 힘이다. 요리로 비유하면 요리사의 실력이고, 공연으로 하면 연출과 배우가 만들어 낸 ‘다름’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음악’을 [라흐마니노프]의 백미로 꼽는 것과는 조금 달리, 배우의 연기와 스토리 그리고 무대 구성에 비중을 두고 칭찬하고 싶다. 공연은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지 않고 최대한 압축했다. 선택과 집중으로 이야기가 분산되지 않게 했다.
상담이라는 과정은 너무 진지한 것이라,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치유를 해야 하는 정신의학자와 이를 거부하는 작곡가의 관계가 강(强) 대 강(强)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런 ‘지루할 수 있음’을 공연은 유머로 대응한다.
니콜라이 달은 치유 행위를 하지 않는다. 라흐마니노프 곁에 머물기만 한다. 라흐마니노프는 그를 완강하게 밀어낸다. 하지만 니콜라이 달은 라흐마니노프의 발언과 행동을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 그의 뻔뻔함에 관객은 계속 폭소가 터진다.
2인극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만드는 배우들의 빠른 변신도 압권이다. 최소 6명의 역할이 등장하지만, 모든 것을 두 명의 배우가 소화한다.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넓은 중극장(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가 2명만으로도 공백 없이 꽉 찬다.
[라흐마니노프]에서 피아니스트는 제3의 배우이자, 또 다른 주인공이다.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완벽한 존재감을 선보인다. 4중주였던 지난해 초연보다 늘어난 현악 6중주는 라흐마니노프의 명곡을 더욱 풍성한 사운드로 선사한다.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곡/음악감독 상을 수상할 정도니 부연할 게 없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뮤지컬에 절묘하게 녹였다. 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은 클래식까지 감상하는 울림과 만족감을 분명 얻고 갈 것이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3월 12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