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도시에서의 삶을 이어간다는 취지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철거 위기가 늘 도사리고 있어 이들은 시한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경의선 폐선부지의 '늘장'. 이곳에 차려진 포장마차 주인 조용분(73) 할머니의 손놀림이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할머니가 부산하게 반찬 준비를 하고 있자 옆 가게 카페 사장이 찾아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조 할머니가 웃으며 농담을 건넨 뒤에는 늘장의 또 다른 가게인 한 사진관 주인이 칼국수를 주문했다.
조 할머니는 지난해 9월 마포구 아현 포차 강제철거 당시 포장마차를 빼앗겼다. 조 할머니가 장사를 이어나가고 있는 이곳은 이렇게 쫓겨난 이들이 모여 '새로운 자치구'를 선언한 곳이다.
지난해 겨울, 이곳에서는 도시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이 모여 25번째 자치구를 넘어 26번째 자치구를 선언했다.
자치구의 입주자들은 조 할머니처럼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포차 상인들, 지난해 7월 가수 리쌍 소유 건물에서 쫓겨난 곱창집 '우장창창'의 주인, 재개발로 쫓겨난 성북구 행당동의 옥탑방 철거민 등이었다.
버려진 이들은 이곳에서 그들만의 자치구를 세우고, 도시에서의 삶을 지속해갈 것을 다짐했다.
이같은 선언은 도심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강제 철거 때문이었다. 재개발·재건축 혹은 도시 경관 사업 등으로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더러는 갈 곳을 찾아 풍찬 노숙 등 도시를 떠돌았다.
자치구를 선언한 '늘장'은 지난 2014년부터 시민들의 벼룩시장으로 사용해 온 공간이었다.
상인들은 이곳에서 중단된 장사를 이어나갔다. 청년들도 함께 했다. 쫓겨나는 사람들의 일시적인 망명지가 된 셈이다.
"현재 서울에서는 다양한 삶의 추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쫓겨 다니는 이들은 삶이 뿌리 뽑히면 그 자체로 잊혀진 사람이 됩니다." 자치구 선언을 제안한 경의선 공유지 시민 행동의 김상철 위원장이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도시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고립되지 않고 약자들의 연대를 꾀하기 위해 이같은 행동을 기획했다"며 "개별적인 투쟁으로만 이뤄졌던 문제를 집단의 문제로, 함께 싸우기 위해 버려진 이들의 자치구를 선언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한시적인 망명지일 뿐, 이들은 겨울이 지나면 다른 공간을 찾아 나서야 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이곳 늘장에서 새로운 수익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국유지인 '늘장'은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이 관리 및 개발권을 소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철도공단 측은 해당 부지에 새로운 상가를 세우는 사업 계획서가 현재 서울시에서 인·허가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공단 측은 늘장이 현재 쫓겨난 이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는 아무런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오히려 시민들로 인해 부지 반환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늘장을 비우는 작업은 곧 실행에 옮겨질 전망이다.
부지 반환의 업무를 맡은 마포구청 측 관계자는 "이번 겨울이 지나면 그 분들을 내보내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