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누드, '눈길'과 '귀향'… 위안부가 표현되는 방식

[페미니즘으로 문학 읽기 ④] 그녀와 소녀들 : 일본군 '위안부'의 문학적 재현

가히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2년 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전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졌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문화를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비평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들도 진행되고 있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가 주관하고 성균관대 문과대학 CORE사업단이 후원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도 그 흐름 중 하나다. 한국문학과 민주주의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이 강의는 13일부터 24일까지 평일 열흘 동안 이어진다. 총 10강을 지상중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남성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방탕하고 문란한 '신여성'
② '독립적 존재' 대우 못 받은, 식민지 조선의 '배운 여자들'
③ 70년 전,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여성들
④ 소녀상, 누드, '눈길'과 '귀향'… 위안부가 표현되는 방식
<계속>

2004년 배우 이승연이 발표하려 했던 '위안부 누드집'은 현재까지도 위안부 재현 시도 중 가장 사회적 반발이 높았던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15년 간의 전쟁을 벌였던 일본은 '효율적인 전쟁 수행'을 위해 군인들에게 여성의 성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군인들에게 '위안'(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함, 또는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을 제공해 전쟁을 뒷받침하는 존재가 '위안부'였다.

16일 오후, 서울 은평구 청년허브 다목적실에서 열린 '페미니즘 시각으로 한국 현대문학사 읽기 4강'의 주제는 '위안부'였다. 이혜령 연구자(성균관대)는 '그녀와 소녀들 : 일본군 위안부의 문학적 재현'을 통해, 국내 문학과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위안부라는 존재가 어떤 모습과 방식으로 드러나게 되었는지를 소개했다.

전쟁 피해국가의 '아픔'인 위안부 문제가 대중문화 안에서 재현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것은,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집'이었다.


배우 이승연은 2004년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누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연구자는 "당시 여배우들의 누드 화보가 많이 나오고, (이것이) 하나의 새로운 모바일 콘텐츠로 시장에 등장했다. 이런 와중에 이승연 씨도 '컨셉 있는 화보'를 찍겠다는 차원에서 위안부와 관련된 주제로 사진을 촬영한 것"이라며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은 이것이 굉장히 자신있게 내놓은 프로젝트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여론의 포화를 즉각 받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위안부를 음란하게 표현했다는 점,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극을 가지고 돈을 벌려고 했다는 점 등으로 그야말로 '몰매'를 맞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다른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이 연구자는 "(위안부 누드를) 찍어서 팔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위안부 재현에) 남성의 성적 판타지와 민족주가 결합돼 있다는 게 굉장히 천연덕스럽게 나타나 있기 때문에 대중들이 깜짝 놀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전에도 위안부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동안 운동을 통해 위안부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다시 유명 여배우의 사진으로 이것이 드러나다 보니 모두 놀랐고, 그래서 신속히 수습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팔 수 있는 것으로 두었다는 것, 이 화보는 매춘과 관련한 전제를 깔고 (위안부를 표현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는 3월 1일 개봉을 앞둔 영화 '눈길'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그러나 최근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위안부'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위안부 재현물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만들어진 '평화의 소녀상'이다. 지난해 개봉한 '귀향'과 오는 3월 1일 개봉 예정인 '눈길'에서 공통적으로 두드러지는 이미지 역시 친구 사이인 두 '소녀'다.

이 연구자는 "'귀향'과 '눈길'은 위안부였기 때문에 죽었던 친구와 이제 할머니가 된 생존자라는 컨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지금에서야 '제출된' 컨셉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영화와 문학이 (위안부를 재현해 오면서) 이런저런 논란을 거치며 고안되고 상상된 장면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학 측면에서는 당사자 아닌 관찰자들이 위안부를 작품 속에서 재현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소설 쓰기를 통해 무엇을 나타내려 했을까. 이 연구자는 "위안부 운동 과정 속에서 당사자가 아니어도 증언하려고 노력한 존재들이 있어 왔다"며 "(위안부) 소설은 피해자이자 증언자 이전의 증언자(청자이자 서술자)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텍스트"라고 바라봤다.

윤정모의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1982)는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아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어머니가 나오는 설정이었다. 이 연구자는 "친밀한 관계에서 '내가 위안부였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일이었고, 그만큼 (고백이 쉽게)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십 년의 침묵이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노라 옥자 켈러의 '종군위안부'(1997)는 무당이라는 영적 존재가 되고 나서야 이루어지는 딸에게 커밍아웃하는 위안부 엄마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 연구자는 "(엄마가) 죽은 이후에야 엄마와 딸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커밍아웃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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