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남성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방탕하고 문란한 '신여성'
② '독립적 존재' 대우 못 받은, 식민지 조선의 '배운 여자들'
③ 70년 전,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여성들
<계속>
2016년 겨울, 2014년 봄여름, 2013년 여름, 2008년 여름… 광화문과 서울시청 등지에서 벌어진 '거리의 정치'는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 이미 '존재했던' 장면이었다.
종로 담벼락에는 포스터와 자보가 매일 빽빽하게 붙었는데, '여성이여 각성하라'라는 메시지를 담은 내용이 적지 않았다. 당시 소설에서도 다른 누구보다 '여성'이 가장 각성한 민중으로 묘사됐고, 노동자를 표현할 때에도 여성이 가장 좋은 대상으로 반복 제시됐다. 해방의 물결에 탑승한 이들은 남성뿐만이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여성도 있었다.
◇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활약과 사회의 발맞춤
'해방기 여성서사와 싸우는 여자들-지하련·이선희·최정희·장덕조의 문학적 선택'을 발제한 류진희 연구자(성균관대)는 이처럼 여성을 가장 각성된 존재로 묘사한 소설, 만평, 기록들이 쏟아졌던 이유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이때 너무 많은 여성들이 가두(거리)에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한국 사회가 거리로 나온 여성들을 환영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해방 후 나온 여러 이미지들을 보면 여성의 '출타'를 불편해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1945년 10월 31일자 '자유신문'에는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는 가운데 혼자 남은 어린 아기 그림이 실렸다. "다 나가면 나는 누가 돌봐 주지?"라는 문구도 있다. 아기를 돌봐야 하는 역할을 저버린다며, 명백히 여성을 문제 삼는 내용이다. 1946년 5월 '민성'에는 해방을 기뻐하며 행진하는 무리가 나타나 있다. 이때 여성과 아이는 하나의 주체로 참여하지 못한 채, 행진하는 무리를 열 밖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념에 따라 파가 갈리기도 했다. 좌파를 지향하는 여성들은 조선부녀총동맹(부총)으로, 우파 노선이었던 여성들은 독촉(독립촉성애국부인회)으로 갔다. 당시 여성단체는 덩치도 영향력도 컸다. 약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오히려 사회가 보수화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당시에는 여성단체 위력이 만만치 않았다.
류 연구자는 "부총 창립대회에는 거의 200개 단체들이 모였다. 김구의 며느리가 오고, 여운형 선생이 축사를 했으며, 무장 독립투쟁을 했던 여장군은 말을 타고 오기도 했다. 여성 사회주의자 운동가로 유명한 박진홍도 부총에서 연설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초의 종합적인 여성단체에 굉장히 많은 관심이 몰렸다. 이 대회에서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모든 신문이 중계했다. 해방기에 나라를 만들려면 여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사회도 이런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 류 연구자는 "'여성', '부녀', '여학생' 이런 식으로 여성잡지도 많이 나오고 여성독자를 대상으로 한 신문 5종이 동시에 나오기도 했다. 여성기자들도 두 자리 단위로 있었다. 여성기자를 뽑을 때에는 '여성해방에 대해 논하시오' 같은 문제를 줬다"고 부연했다.
여성정치, 여성문화운동에 대한 사회적 스탠스도 급진적인 편이었다. 북한은 '남녀평등법'을 공표해 버렸고, 남한도 최초의 여성 전담 정책 기구인 부녀국을 만들어 운영했다.
◇ 안일한 비평 무색케 한 여성작가들의 범상찮은 작품들
김동리는 잡지 '문화' 여류작가특집에 실은 '여류작가의 회고와 전망-주로 현역 여류작가의 작품세계에 관하야'(1947. 7.)라는 글에서 당대 활발한 문학활동을 했던 여성작가 4명을 싸그리 공격했다.
"최정희의 작품은 주인공은 모두 여성, 그 중 불행한 여성… 눈물과 한숨은 숙명적이요. 피동적이다. 최 씨가 정열적, 생활적, 적극적, 투쟁적인 데 반해 장덕조 씨는 고전전, 정관적, 소극적, 체념적… 이선희 씨는 작품의 테마가 잡혀있지 않고 전체로 제스처만이 가득… 지하련 씨는 리얼리즘을 닮으려다 알뜰한 인생을 잃었다. 여류작가란 이렇게도 무책임할 수 있는겐지 모르겠다."
정작 최정희, 장덕조, 이선희, 지하련이 들고 나오는 작품은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여성작가'에게 더 박했던 '안일한 비평'을 무색케 만든 것이다.
또, "장덕조의 '함성'은 굉장히 재미있고, 그냥 읽어도 너무 감동적인 소설이다. 일본에 끌려가는 여성들을 소재로 해 하층 여성계급을 전면화했다. 극중 점순이 엄마는 여성들과 함께 난동을 부려 일본으로 갈 뻔했던 딸을 빼오는 데 성공한다. 여성 하층민들의 연대를 낭만화하면서, 너(하층민 여성)나 나(배운 여성)나 똑같이 한 표를 지닌 국민이지 않느냐 하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실로 대단한 서사"라고 평가했다.
이선희는 '개벽' 기자 출신으로 이미 필력을 인정받아 별도의 등단 없이 바로 작품을 발표한 작가였다. 류 연구자는 "식민지 시기 작품에선 가부장제에 (맞서) 고투하는 여성을 이국적으로 그렸다. 그런데 해방기에 처음 쓴 '창'은 굉장히 다른 작품이다. 토지개혁이 진행됐을 때 개인이 어떤 비극을 느낄 수 있는지를 다뤘다"고 소개했다.
류 연구자는 "당시 남성작가들은 (식민지 시기의 자기 행동, 이를테면 '친일'에 대해) 자기 증빙을 해야 했기에 자기 이야기를 주로 쓰는데, 이선희와 지하련 두 여성작가는 남성 주인공을 내세우면서도 가장 첨예한 정치적 주제를 선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선희의 '창'과 지하련의 '도정'은 국내 문학계에서 잘 언급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6·25 이전 월북한 A급 월북작가로 꼽혀 1988년이 되어서야 '해금 조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류 연구자는 "90년대의 여성작가들이 많이 나오면서, 과거 여성작가들의 연구도 이루어졌는데 이선희와 지하련 작품은 식민지 시기의 '여성적' 작품들이 많이 읽혔다. 여성적이지 않았던 '창'과 '도정'은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