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잡아죽이자!"…폭력과 혐오 발언 그리고 눈물 ② 참전의 영광…"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③ "얼마나 어려웠는지 아느냐"…'밀알'의 외침 ④ '박정희'가 아니라 박정희 '시대'의 유산 ⑤ 21세기에 남은 박정희 시대의 한줌? 아니 '절반' ⑥ 젊은 보수주의자가 '아스팔트할배'에게 |
단어 그대로 목숨을 건 작전만 여러 차례, 전쟁으로 이미 아버지를 잃은 상황에선 두려울 게 없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살아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각오였다. 그는 “목숨을 걸고 지킨 나라인데 이렇게 망하게 할 순 없다”면서 친박 집회에 참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거리로 나온 ‘아스팔트 할배’의 상징 중 하나는 군복이다.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군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김씨 할아버지처럼, 말 그대로 “목숨을 걸었던” 아스팔트 할배들의 전쟁 경험은 친박 집회를 수놓는 군복과 그들의 주장, 군복 입은 할배들을 ‘우대’하는 그들 그룹의 정서까지 이어져 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이 헌신 또는 소모됐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개인의 의지가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광장과 집회에 대해 반감을 나타냈다.
A(76) 할아버지는 7살 때 국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공산군이 민간인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을 직접 봤다고 한다. 19살 때 입대해서는 베트남전에 파병돼 고엽제로 고생을 했다. 나라에서 주는 월급은 너무 적었지만, 나라에서 가져간 돈으로 도로도 놓고 경제도 살렸다고 생각해 참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이 (친박)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면서 “나라에서 녹을 먹는데 안 나오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역시 베트남에 14개월 파병된 경험이 있다는 정운재(77) 할아버지는 한 야당 정치인의 “목을 딸 준비가 돼 있다”며 격한 반응을 보이다가도 “젊은이들의 힘든 현실은 이해하지만 나라도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맹경수(71) 할아버지 역시 참전 경험을 얘기하며 “우리가 조국 번영의 밀알이 됐던 사람인데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고 울었다. 김남석(72) 할아버지는 아예 해병대 전우들과 함께 집회에 나온다.
이들에게 최근의 탄핵 정국은 자신들의 희생 위에 세운 나라가 흔들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공통적이었다. 대통령이 비판받는 상황은, 개인보다 국가를 앞세우고 살았던 그들의 젊은 시절과 너무나 다르고 따라서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감상적일 뿐이라고까지 한다.
나이를 밝히지 않았지만 백발이 성성한 B씨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라고 적힌 시청 건물 외벽의 현판을 가리키며 “젊은 사람들은 다들 귀하게 자라서 저런 데 혹해서 몰리고, 애국하는 마음을 모른다”고 답답해했다. 소금 시래기국으로 밥을 먹으며 ‘죽자고 견딘’ 그의 시절에 대한 호소가 절절했다.
아스팔트 할배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 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는 참전 경험이 있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의 목소리를 압도한다. 개인의 삶보다 국가가 우선이었던 시대를 관통한 이들에게, 전쟁에서 목숨을 걸었던 경험은 그 어떤 '스펙'보다 존중받을 가치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집회에서도 군복을 고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