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심'은 제목과 달리 재판이 중심이 되는 영화가 아니다. 살인 누명을 쓴 채 10여 년을 복역한 청년이 '재심'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언론을 통해 수없이 방송됐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바로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화다.
내용은 간단하다. 변호사 준영(정우 분)은 마음에도 없는 무료 봉사 변론을 하다가 살인죄로 복역하다 출소한 현우(강하늘 분)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의문을 느끼게 되고, 현우가 범인이 아니라고 직감한다. 어떻게든 큰 건을 해보려는 준영은 이미 세상을 믿지 않는 청년 현우를 설득해 나간다.
영화는 준영과 현우의 관계를 결코 감상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눈 먼 노모를 모시고 사는 현우는 살인자라는 낙인을 벗어나지 못한 채,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준영은 유명 로펌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현우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사실 현우가 준영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삶을 앗아가버린 과거와의 끊임없는 조우와 다름없다.
'양아치'로 낙인 찍힌 소년에게 가해진 공권력의 처절한 폭력과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세상. 영화에서 현재보다 더 중요하게 조명하는 순간은 현우가 홀로 겪어냈던 잔혹한 과거의 진실들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약자를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짓밟는 잘못된 공권력은 어디에든 도사리고 있다.
살인자 현우가 '진짜' 살인을 결심한 순간은 그래서 더 뼈저린 아픔을 남긴다. 누군가는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행복할 권리를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우가 무죄 선고를 받아내는 순간까지 조명하지 않고, 재심이 시작된 법정에서 막을 내린다. 오직 현우와 준영의 만남을 통해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소수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현실의 결말은 어떨까.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피고인 최모 씨는 지난해 11월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와 유사한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의 피고인들도 누명을 벗었다. 경찰은 경찰청장 이름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경찰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공식입장이었겠지만 그 긴 세월을 보상하기에는 너무 짧은 글줄이었다.
재심을 위해 법정에 선 준영의 첫 마디가 문득 떠오른다.
"제가 본 법정에 선 이유는 검찰과 경찰, 법조인에게 사과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