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박정헌 (산악인)
박범신 작가의 베스트셀러죠, '촐라체' 여러분 잘 아실 겁니다. 히말라야 봉우리 촐라체에서 있었던 조난기를 그린 소설인데요. 그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에베레스트, K-2, 안나푸르나, 히말라야 이런 8000m 고봉들을 7개나 오른 세계적인 암벽 등반가, 박정헌 대장입니다. 2005년 그 불의의 조난사고로 손가락 8개, 발가락 2개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2년이 흐른 올 봄, 12년 만에 다시 히말라야 빙벽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그가 다시 히말라야로 향하는 이유,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박정헌 대장 직접 만나보죠. 박 대장님, 안녕하세요.
◆ 박정헌>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12년 만이라고요?
◆ 박정헌> 네, 벌써 그렇게 훌쩍 12년이 흘러간 것 같네요. (웃음)
◇ 김현정> 저는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게 끔찍한 조난사고를 당하고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것 같거든요. 떠올리기도 싫을 것 같은데, 그런데 또 가세요?
◆ 박정헌> 저도 한 12년 동안을 외도를 한 것 같고요. 그런데 다시 12년 만에 원위치로 돌아오게 된 거죠.
◇ 김현정> 등산가로서 히말라야를 12년 만에, 왜요? (웃음) 뭐가 그렇게 좋으셔서요?
◇ 김현정> 아이고, 그래요. 지금 들으시는 분들 중에 아니, 도대체 박정헌 대장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었길래 저렇게 얘기하는가 이런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조금 아픈 기억입니다마는 2005년 그때 얘기를 잠깐만 해 봐도 될까요, 대장님?
◆ 박정헌> 네. 촐라체라는 산은 에베레스트에서 약 15㎞ 정도 떨어져 있거든요.
◇ 김현정> 촐라체가 고봉인 거죠, 거기도 히말라야의?
◆ 박정헌> 네네. 6440m인데 난이도적으로 봤을 때 가장 최고의 전문가들이 선호하는 산이라고 보면 돼요. 1800m의 수직고도를 가진 75도 경사도를 지닌 산.
◇ 김현정> 이야.
◆ 박정헌> 벽이라고 봐야죠. 마이너스 30도의 혹한 속에서 3개월 동안 겨울에는 특히 햇빛이 들지 않아요. 그럼 적어도 10도에서 15도 정도 추위 속에서 등반을 하는 거거든요.
◇ 김현정> 네. 그런데 그때 촐라체를 일단 정복까지는 하신 거잖아요?
◆ 박정헌> 네, 하고 저희가 하산하면서.
◇ 김현정> 하산하다가?
◆ 박정헌> 크레바스 있죠. 빙하의 균열된 틈 사이.
◇ 김현정> 틈 사이?
◆ 박정헌> 두 사람이 크레바스에서는 로프를 묶고 지나가게 되는데요. '큰 크레바스 있으니까 조심해' 그랬는데 근데 그 순간에 이미 후배는 크레바스 쪽으로 빠져들었거든요.
◇ 김현정> 아이고….
◆ 박정헌> 저는 한 순간, 제가 가지고 있던 얼음 지팡이를 얼음바닥에 내리치면서 정말 한순간에 우당탕탕 하면서 내 인생의 모든 슬라이드 필름이 흘러가는 것 같은 순간이죠. 그리고 정신을 차린 후에 끊임없이 후배를 부르기 시작했고요. 정말 다행인 게…. 후배는 살아 있었고요, 기적적으로.
◇ 김현정> 불렀더니 답을 해요?
◆ 박정헌> 네, 무려 23m을 떨어진 거에요. 그것도 시간이 거의 2시간이 다 지난 이후에, 이제 로프를 끊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왜냐하면 내 자신마저도 빙하 위에 그냥 있는다는 그 자체는 견딜 수 없는 추위거든요.
◇ 김현정> 영하 30도의 혹한….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
◆ 박정헌> 영하 30도의 혹한, 이미 3박 4일 동안 저는 하루에 500칼로리밖에 섭취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고요. 두 다리가 골절된 후배와, 저 역시 갈비뼈와 오른쪽 어깨가 탈골된 상태였어요.
◇ 김현정> 왜냐하면 그냥 버텨야 됐으니까. 그 로프에 한 70, 80㎏ 나가는 그 남자 후배를 매달고 버티신 거 아니에요, 2, 3시간을.
◆ 박정헌> 그럼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폭설 속에서 2박 3일 동안 기어서 내려오게 된 거죠.
◇ 김현정> 그런 거죠, 그런 거죠. 그 과정에서 몸이 상하신거죠?
◆ 박정헌> 그렇게 돌아왔지만 3개의 발가락과 8개 손가락의 첫째 마디와 둘째 마디를 절단했죠.
◆ 박정헌> 그렇죠. 그런데 사실은 두 사람이 로프를 묶는 순간 우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거거든요. 서로의 목숨을 담보하는 거니까요.
◇ 김현정> 거기서 만약 그 줄을 끊는다면 사실은 나도 같이 죽는 거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 박정헌> 네, 그렇죠.
◇ 김현정> 결국 그렇게 해서 그 지옥 속에서 살아오고 물론 손가락, 발가락은 잃었지만 파트너, 내 목숨을 또 구해내신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등반하는 분한테 손가락 잃고 발가락 잃고 더 이상 등산 못한다는 얘기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들리거든요?
◆ 박정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죠, 처음에는…. 그런데 제가 철이 없나 봐요. 저는 철이 안 들어서 그런가 봐요. (웃음) 다시 12년 만에 이렇게 도전하고 있으니까요.
◇ 김현정> 철이 안 들어서? 다시 그 산이 그리워지신 거예요. (웃음)
◆ 박정헌>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을 가장 숨기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 삶에서 그렇게 아팠던 그 시간들이 항상 저는 가장 귀중한 시간이었고 새로운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침묵과도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해요.
◇ 김현정> 아팠던 그 시간이 오히려?
◆ 박정헌> 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다시 산으로 가지도 못했을 거잖아요.
◇ 김현정> 참…. 그러니까 자연 앞에 서면 말입니다. 굉장히 뭔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모양이에요. 등반가들 이야기 들어보면.
◆ 박정헌> 그 산에 올랐다는 그 자체가 산의 끝이 아니고 새로운 산을 향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돼요. 그래서 다음 산으로 출발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시켜주는 거죠. 그게 정상의 의미겠죠.
◇ 김현정> 그렇군요. 저는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히말라야가 많이 아름다운가요?
◇ 김현정> 맞아요, 맞아요.
◆ 박정헌> 그래서 그 어떤 비어 있는 그 공간 속의 적막함이 아름다움을 주고 위안을 주고 힐링을 주고 그런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 김현정> 참 의외네요. 어떤 게 가장 아름답습니까 하면 저는 굉장히 조각처럼 새겨져 있는 얼음 벽 이런 걸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그냥 텅빈 공간이 아름답다? 그렇군요. 무사히 잘 다녀오시고요, 대장님.
◆ 박정헌> 네. 고맙습니다.
◇ 김현정> 12년 만에 그 아름다운 풍경들 다시 꽉꽉 담아서 새로운 에너지 받아오시기를. 저희에게도 전해 주시기를 부탁드릴게요.
◆ 박정헌> 네, 나눠드리겠습니다.
◇ 김현정> 오늘 고맙습니다.
◆ 박정헌> 네. 고맙습니다.
◇ 김현정> 다시 아름다운 도전에 나섭니다. 히말라야에서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 8개, 발가락 2개를 절단당했습니다마는 12년 만에 다시 히말라야로 오르는 박정헌 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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