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의 주간화·휴일의 평일화는 이제 그만!

OECD 평균만큼 쉬려면 주5일 근무부터 전면확대하고 휴일·휴식 법으로 정해야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업무수첩)에 적힌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업무지침
# 이마트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모씨는 이번 설날 연휴에도 연장근무를 했다.

김씨는 "설날 연휴에는 고객이 몰리기 때문에 명절 전후로 5시간씩 연장근무를 선다"며 "특히 즉석조리나 수산물, 회, 축산 등을 판매하는 팀은 연장 근무를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인 강모씨는 설날 당일 24시간 근무를 섰다.

강씨는 "매일 새벽 6시에 교대를 하고, 하루 근무시간이 19시간인데 맞교대를 하니 평균 9시간 반 근무하는 셈"이라며 "2인 1조로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데다 감시단속직 특성상 잠시도 사업장을 비울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쉬는 명절 연휴라도 일손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지난 25일 1월 수당을 확인한 김모씨는 새삼 기분이 찜찜했다. 지난해 여름 거래처 확장으로 회사가 온통 비상이 걸린 바람에 어영부영 휴가를 가지 못한 김씨에게는 연차수당도 반갑지 않았다.

김씨는 "총무과에서는 연차휴가를 내라고 성화지만, 정작 팀장에게는 눈치가 보여 머뭇거리다 여름도 겨울도 휴가 기간을 놓쳤다"며 "한 해 내내 정신없이 일했는데, 수당을 못 받더라도 잠깐 휴가를 내고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비망록)에 적힌 3줄의 업무지침이 직장인들 사이에 이야깃거리로 떠올랐다.

"① 야간의 주간화 ② 휴일의 평일화 ③가정의 초토화 * 라면의 상식화" 이제는 영어의 몸이 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출근 첫날, 김 실장의 살벌한 업무지침에 노동자들은 "남 일 같지 않은 꼰대 얘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OECD 국가 연간 노동시간 비교. 그래프 중간의 노란 막대가 OECD 평균, 오른편의 붉은 막대가 각각 한국(OECD 보고/경제활동인구조사)의 노동시간이다. 정부가 OECD에 보고한 한국의 취업자 연간 노동시간은 2015년 2113시간으로 OECD 2위지만, 실제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는 2273시간으로 가장 길다.
◇ OECD 평균까지 줄인다던 노동시간, 박근혜 정부 들어 악화일로

2011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내놓은 캐치프레이즈인 '저녁이 있는 삶'으로 노동자들의 공감을 샀던 노동시간 단축은 이미 노사정 모두 합의한 사회적 목표로 자리잡았다.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비단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늘어난 여가 시간만큼 내수 확대로도 이어져서 실제로 주40시간 근무제 이후 휴일 여가시간이 10% 늘면서 여가비용도 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노동계 최대 현안인 일·가정 양립이 수월해지면서 육아 부담이 줄어들어 저출산 문제에도 긍정적 영향이 기대된다.

가장 큰 장점은 노동시간을 줄인 만큼 일자리를 나눠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주5일 근무제 미적용 사업장에 주5일 근무를 도입해 일거리를 나누면 새로운 일자리가 5~70만개가 더 생겨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박근혜 정부도 2020년까지 한국 노동시간 OECD 평균인 1800시간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2011년만 해도 2100시간이었던 연간 노동시간은 2013년 2247시간에서 2014년 2284시간, 2015년 2273시간으로 2200시간의 벽을 깨지 못한 채 오히려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이미 법으로 정한 주5일 40시간 및 당사자 합의시 연장근무 포함 총 주52시간으로 정한 노동시간에 대해 "주말근무는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는 행정해석을 내리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사실상 주6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까지 내놓았다.

◇ 주5일 근무의 상식화, 휴일의 법정화, 휴가의 의무화

이에 대해 노동계는 아직도 노동자 3명 중 1명꼴인 663만 명(34.3%)이 주5일(40시간) 근무제를 적용받지 못한 채 정체됐다며, 우선 주5일 근무제를 전면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심지어 법정노동시간인 주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도 345만명, 17.9%에 이른다"며 "가장 시급하고 유효한 방안은 적어도 현행 법으로 정한 주52시간을 못 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또 하나의 발걸음은 설날 연휴와 같은 공휴일의 법정화 작업이다. 현재 공휴일은 대통령령으로만 정해질 뿐, 국민 전체에 적용되는 공휴일에 관한 법률은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명을 받는 관공서가 쉬기 때문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공기업이나 민간 기업부터 관행적으로 공휴일에 쉬지만, 노사 단체협약에서 정하지 않으면 고용주가 자의적으로 근무를 강요해도 노동자들은 저항할 길이 없다.

김 연구위원은 "실제로 설날, 추석 등 중요한 명절이 아니면 공휴일에 일하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며 "민간 사업장의 노동자도 공휴일에 쉬도록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팀원이나 인사평가자의 눈치가 보여 연차휴가를 가지 못하는 관행도 노동시간 단축의 큰 걸림돌이다.

한국은 기업이 연차휴가를 허용하도록 권장하기 위해 노동자가 휴가를 가지 못할 경우 통상임금에 따라 그만큼 수당으로 대신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등 선진국은 아예 휴가를 수당으로 대체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반드시 노동자가 휴가를 갈 수 있도록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 노동시간 대신 수당 줄이는 꼼수는 막아야

다만 일부 저소득층이나 노동시간 단축을 악용하는 사업장에서는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제기되는 점은 유념할 만하다.

이마트 노동자 이씨는 "사측은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이라는 명목으로 연장근무를 막는데, 정작 업무량은 그대로다"라며 "특히 인사 승급을 앞둔 정식 직원들은 수당도 받지 못한 채 연장 근무를 계속한다"고 말했다.

경비원 강씨도 "올해에는 용역업체가 휴게시간을 늘린다는 핑계로 일은 그대로 시키면서 월급을 줄여서 고민"이라며 "어차피 경비실에서 자야 하고, 새벽 수면시간이라도 주민이 깨우면 나가서 일해야 하는데 수당만 깎아 노동시간을 오히려 늘려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서는 우선 유럽처럼 휴식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럽연합 근로시간지침에는 모든 노동자에게 하루 24시간마다 최저 11시간의 휴식시간이 매일 부여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경우 아파트 경비원 등 감시단속직에 흔한 24시간 맞교대를 원천적으로 금지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영세제조업 현장에 만연한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제약하고, 야근한 노동자는 무조건 오전 근무를 쉴 수 있어 노동시간 단축을 강제할 수 있다.

또 노동시간이 줄어든만큼 임금을 보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을 재원으로 노동시간 단축 지원금 등을 운영할 필요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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