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권력'에 거침없는 풍자·비판…美연예계의 '뚝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후 첫 기자회견.

한 기자가 전 정부의 건강보험개혁정책인 이른바 '오바마케어' 폐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대안 없이 폐지하면 2천만 명이 건강보험을 상실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의 말을 끊으며 일갈한다.

"이봐요. 내가 곧 미국 대통령이 될 거예요. 우리 모두 죽은 목숨인 거죠."

물론 실제상황이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 TV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지난 14일자 방송에서 트럼프로 분한 배우 알렉 볼드윈이 연기한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전 가진 기자회견을 패러디한 이 프로그램에서 볼드윈은 진위가 확인되지 않아 미국 언론이 금기시하는 이른바 '트럼프 X파일'에 등장하는 자극적인 성추문도 거침없이 거론했다.


전임 대통령도 아니고, 임기 말 대통령도 아닌, 취임을 코앞에 둔 데다 평소 자신을 향한 비판에 '쿨하게' 받아들이는 성격과도 거리가 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그야말로 성역 없이 풍자한 것이다.

방송 패러디는 어디까지나 풍자이고 코미디일뿐이라고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수 있다지만, 미국 스타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치적 소신발언도 거리낌없이 한다.

연예인의 정치 개입이 금기시되고, 실제로 정치성향을 드러낸 이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나 출연 정지 등의 후속조치가 있는 국내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트럼프 역을 맡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후지다"는 트위터 공격을 받기도 했던 볼드윈은 이에 굴하지 않고 트럼프 취임식 직전 뉴욕 집회에 직접 참석해 트럼프 행정부를 "수치스럽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반대 집회에는 볼드윈뿐만 아니라 로버트 드니로, 스칼릿 조핸슨, 마돈나 등 유명 스타들이 참석해 거침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는 최근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을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이민정책과 장애인 조롱 등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데 할애하기도 했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배우 샤이아 라보프는 앞으로 4년간 반 트럼프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언했고, 지난 25일 시위 도중 다른 이와 시비가 붙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미국에선 선거 기간 스타들이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지를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할리우드가 이처럼 정치적 표현에 자유롭고, 특히 진보적인 성향을 노출하는 데 거리낌 없는 것은 과거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을 할리우드 역시 피해가지 못했던 데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개인적 소신을 이유로 불공평한 탄압을 받은 뼈아픈 과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정서가 지배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트럼프가 SNL이나 볼드윈, 스트리프의 풍자나 비판에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보복'이나 '블랙리스트'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는 스타들은 드물다.

볼드윈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쇼의 메인 작가"라며, 앞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을 소재로 풍자를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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