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게 부는 바람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전통시장에서 설 명절 준비를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명절 대목을 노리는 시장 내 전집에서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쉼 없이 부침개와 전을 부쳐내고 있었다.
노릇하게 익힌 부침개와 전은 보기 좋게 진열돼 눈길을 끌었지만 어쩐 일인지 이를 사가는 손님은 뜸했다.
◇ 엎친데 덮친격…한숨 가득한 상인들
오후 4시가 다 된 시간. 지난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전을 팔지 못했다는 상인 이모(70)씨의 입에선 한숨이 새어나왔다.
더욱이 AI 여파로 수급이 어려워져 가격이 치솟은 계란 때문에 전 값도 kg 당 1만5000원에서 2만원으로 올린 상황.
이 씨는 "전 장사는 명절 전 3일 동안 하는건데 평일보다도 장사가 안된다"며 "준비해 놓은거라 어쩔 수 없이 전을 부치고 있지만, 경기가 어려워 그런지 팔리지도 않을뿐더러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보다 사과 가격을 7천원 가량 낮춘 과일가게도 상황은 마찬가지.
지동시장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과일가게에는 설 대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과, 배, 한라봉 등 선물용 과일박스가 쌓여 있었다.
과일장사만 25년을 했다는 상인 허모(63)씨는 "올해가 가장 어렵다"며 하소연했다.
4~5년 전만 해도 평일에만 100만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지금은 명절을 앞두고도 매출이 3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허 씨는 "가격을 인하했는데도 장사가 안된다"면서 "명절이라고 물건을 많이 갖다놨지만 사가는 사람이 없어 매일 공과금 내기도 빠듯한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2~3명씩 꾸준히 손님의 발길이 이어지는 축산물 판매점들도 "예전엔 명절 앞두고 줄을 서서 고기를 사갈 정도로 시장이 북적거렸다"며 "국거리, 적거리도 많이 나가지 않으니 대목이라 할 수도 없다"고 손사래 쳤다.
전통시장을 찾은 시민들도 경기 불황에 주머니를 선뜻 열기가 쉽지 않다.
시민들은 최대한 저렴한 재료를 찾거나, 명절 준비에 필요한 소량의 음식만 구매했다.
시민 김모(53)씨는 "전에는 제사용품 중 과일을 사더라도 박스로 샀었는데, 지금은 물가가 많이 오르다보니 제사상에 올릴 만큼만 사게 된다"며 "매년 시장에서 명절 준비를 하지만 올해는 사람이 많이 줄어 상인들이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서모(48)씨는 "경기가 안좋다고 하지만 이렇게 안좋을 줄 몰랐다. 물가가 너무 올랐다"며 "생선, 채소, 계란 모두 비싸 조금씩만 샀다"고 설명했다.
명절 특수가 사라진 전통시장. 상인은 물론 시민들까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명절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