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전날 기자들에게 도착한 갑작스러운 개발사 나이언틱의 기자간담회 초청 메시지는 '포켓몬고' 한국 출시 가능성에 무게를 두며 큰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행사 진행은 구글의 자회사로 인그레이스와 포켓몬고를 흥행시킨 글로벌 게임 업체 답지 않게 매끄럽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 예고 없이 서둘러 한국 출시한 포켓몬고…급조된 기자회견
행사에 등장한 관계자는 포켓몬고 개발사인 나이언틱의 데니스 황(한국이름 황정목) 아트 총괄이사와 포켓몬 IP(지적재산권)를 보유한 포켓몬 컴퍼니의 한국지사 포켓몬 코리아 임재범 대표가 전부였다. 다른 국내외 업체들의 홍보 행사에 회사 관계자나 임원들이 대거 참석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를 보였다.
황 이사는 포켓몬고를 소개하는 첫 인사에서 "미국에서 급하게 한국에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간담회장에는 포켓몬고를 소개하거나 행사장으로 안내하는 피켓 하나 없이 행사장 무대 멀티비전에 노출된 포켓몬고와 나이언틱 로고 이미지, 게임 소개 동영상이 전부였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급조된 행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황 이사는 지난 해 11월 코엑스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2016 넥스트 콘텐츠 컨퍼런스'에 기조 연사로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며칠 뒤에는 잠실 석촌호수를 비롯해 서울 전역에서 나이언틱의 '땅따먹기' AR 게임 인그레이스 글로벌 사용자들의 대결 이벤트 축제 행사인 '인그레이스 어노말리: 비아 느와르 서울 ' 행사에도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인그레스 스토리상의 메인 캐릭터 배우를 포함해 나이언틱의 주요 개발자 6명이 함께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에 거점을 둔 동해랑 아시아 태평양 커뮤니티 매니저도 참석해 사회를 봤지만, 이번 포켓몬고 행사장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 포켓몬고 '오픈스트리트맵' 사용하고도 "밝힐 수 없다"…왜?
포켓몬고 출시 행사는 자연스레 구글 지도 반출 불허 문제와 관련해 포켓몬고에 적용된 지도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황 이사는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지도 데이터를 사용했다"며 포켓몬고에 적용된 지도 데이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를 꺼려했다.
나이언틱은 왜 포켓몬고 지도 데이터 소스 사용에 대해 함구한 것일까.
오픈스트리트맵은 2005년 영국에서 출범한 비영리단체 오픈스트리트맵 재단의 오픈 소스 지도 서비스다. 위키와 같이 집단지성이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유럽에서 가장 먼저 시작돼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한 매핑 작업이 이루어져 상당히 정밀한 지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학은 '구글 스트리트뷰'와 '오픈스트리트맵'을 활용해 자율주행 자동차용 소프트웨어를 학습시키는 기술을 개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국내 업체들의 고정밀 지도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어 오픈스트리트맵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진다. 이때문에 사용자가 직접 지도를 만들어가는 오픈스트리트맵 특성상 현재 한국 지도 매핑은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정밀 지도가 만들어져 있고 수도권 밖으로 나갈수록 정확도가 크게 떨어진다.
실제 오픈스트리트맵 한국지도에서는 서울의 경우 주요 건물과 도로, 관공서, 지명은 매우 자세히 노출되어 있지만 편의점이나 카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등 상권에 대한 표기는 거의 없는 상태다. 도로명주소에 준하는 고정밀 내비게이션 수준이 되어야 이들 관련 업체나 상점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인 것이다.
◇ '반쪽자리 포켓몬고' 유명지역 빼면 제대로 즐길 수 없어
포켓몬고를 실행하면 가상의 지도상에는 도로와 대지 구분이 되는데, 공중시설이 집중된 곳을 제외하면 동네 위치에서는 포켓몬고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제공되는 콘텐츠가 빈약한 것도 사실이다. 서울 강남을 비롯한 핫플레이스에서는 포켓몬고 활성화가 뛰어난 반면, 서울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출시된 한국버전은 포켓몬들의 등장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포켓스탑, 체육관 등의 표기도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구글맵에 비하면 정밀 표기가 부족한 오픈스트리트맵의 한국지도는 사실상 지도로서의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사용자가 오픈스트리트맵의 매핑에 참여하거나 게임에 지원되는 위치 이슈를 제보하는 링크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다만, 나이언틱이 포켓몬고의 한국 출시를 상당히 기대하고 준비해왔던 것은 분명해보인다. 포켓몬고에 적용된 5개 언어에 한글이 우선 적용된 것은 그만큼 한국 게임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부정확한 지도 데이터를 사용해서라도 한국에 출시해야만 했던 이유가 '한국 게임 시장의 가치'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 설 연휴 대규모 이동 맞춰 사용자 위치기반 데이터 확보 관측도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나이언틱이 서둘러 한국에 출시 한 이유로 구정 설 연휴 기간 전국 각지로 이동하는 대규모 귀성객과 귀경객의 대이동에 맞춰 사용자의 위치기반(LBS)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오픈스트리트맵 한국 지도 데이터의 부정확성을 이같은 방식으로 어느정도 극복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모회사인 구글의 정책을 따라야 하는 나이언틱 입장에서 한국 고정밀 지도를 사용할 수 없는 아쉬움을 오픈스트리트맵으로 대체하는 것이 차선책일 순 있어도 한글화까지 한 포켓몬고 게임이 충분한 준비 없이 서둘러 출시됐다는 지적을 피할 순 없어 보인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속담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반쪽자리' 게임을 출시한 뒤 "오랜시간 준비해왔던 한국 출시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입장이 한국 사용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이언틱이 지도 데이터 소스에 대해 그리 함구하려는 이유가 스스로 부족한 점을 감추기 위해서였다면 높은 한국 게이머들의 수준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