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윤선의 자백…"블랙리스트, 김기춘이 시켰다"

특검, 김기춘 윗선인 박근혜 대통령 정조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7일 오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무수석 시절,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블랙리스트를 전혀 본 적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던 '법꾸라지(법+미꾸라지)' 김 전 실장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는 조 장관의 자백으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총괄지휘한 혐의가 더욱 짙어졌다.

블랙리스트 수사 막바지에 다다른 특검은 이제 김 전 실장 '윗선'인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 조윤선 "시켜서 했을 뿐"…블랙리스트 총괄지휘 김기춘 지목


19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지난 17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피의자로 소환된 조 장관은 특검 조사에서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시켰다"고 진술했다.

특검 소환 당시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며 조사실로 향한 조 장관은 자신이 관여한 것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이 모든 게 청와대 '왕실장'인 김 전 실장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따랐을 뿐이라며 '공모' 의혹에 선긋기에 나선 것이다.

사정당국의 얘기를 종합하면, 블랙리스트 관여 의혹을 줄곧 부인해오던 조 장관이 심경을 바꿔 "김 전 실장의 지시를 받았다"며 실토한 배경에는 특검의 집요함과 더불어 '대통령의 여자'에서 '국정농단 공모자'로 하루 아침에 추락하게 된 조 장관을 위로하며 자백을 유도한 것이 주요했다.

이같은 심경 변화로 김 전 실장보다 30여분 일찍 특검에 출석한 조 장관이 김 전 실장보다 무려 6시간이나 귀가가 늦어지게 됐을 것이란 분석된다.

김 전 실장은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대통령 비서실장을, 조 장관은 2014년 6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면서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가 김 전 실장 지시로 정무수석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작성돼 교육문화수석을 거쳐 문체부에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블랙리스트 관련 윗선의 지시를 받고 이행했다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은 이미 구속됐다.

특검은 이 과정에서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 장관이 "이번 사건의 몸통"이라면서 "핵심 역할을 했다"는 진술 등을 상당 부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조 장관이 배후로 김 전 실장을 거론하면서 '김 전 실장 총괄지휘 → 조 장관 실행'이라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 특검, 김기춘 넘어 朴대통령 겨냥

최근 특검은 조 장관이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를 동원해 '반세월호 집회'를 열도록 시키고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절반 가까이 삭감하라"는 지시를 한 정황을 포착,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특검은 그러나 이에 앞서, 김 전 실장이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영화제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는 지시를 문체부에 내렸다는 관계자 진술을 이미 확보했다. 조 장관이 "김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했다"는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특검은 보고 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도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를 지휘한 흔적이 역력하다. 김 전 실장이 지시한 이른바 '문화계 좌파 인사 지원 배제'는 결국 대부분 현실화됐다.

그의 비망록에 따르면 김 전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을 풍자한 작가 홍성담씨를 지목해, '제재조치 강구'하라거나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문화계 전반에 대한 선별 작업도 강조했다. 공직자 성향을 파악해 '순혈'로 정비하라는 지시도 담겼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이와 관련, 지난달 CBS 라디오에 출연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는 김 전 실장의 지시를 일방적으로 받아쓰는 자리였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이 시키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유 전 장관의 증언은 조 장관 역시 "김 전 실장이 시켜서 했다"는 '실토'와 맥을 같이 한다.

이규철 특검보는 "(두 사람) 조사가 충분히 돼 있다"면서 "재소환 없이 조사 결과 종합하고 진술 검토한 뒤 금명간 사전 구속영장 여부 결정될 것"이라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로부터 약 6시간 뒤 특검은 두 사람에 대해 직권남용과 위증 등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블랙리스트 수사'의 정점을 김 전 실장으로 일단락한 특검은, 이제 김 전 실장의 '윗선'인 박 대통령 개입 여부 확인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미 특검은 박 대통령이 개입한 여러 정황과 흔적을 상당 부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김 전 실장의 혐의가 공개되면 사회적 파장이 상당히 클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구속 여부는 20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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