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은 이날 특검이 소환 통보했던 시간 직전인 오전 9시29분쯤 특검 사무실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선 이 부회장은 "이번 일로 저희가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린 점 국민들께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최씨 지원을 직접 지시했냐", "지원금이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대가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 없이 특검 사무실로 올라갔다.
◇ 9년 만에 피의자로 특검 앞에 선 이재용…'이번엔 녹록치 않다'
특검은 지난 2015년 박 대통령이 국민연금을 시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찬성하도록 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고, 이 부회장은 그 대가로 박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인 최씨 일가에 거액의 지원금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이 특검으로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것은 지난 2008년 삼성비자금 사건 이후 9년 만이다. 당시 전무였던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부당 승계와 관련해서 적용됐던 4건의 고소·고발건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그리 녹록치 않다.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온 특검이 뇌물죄 의혹의 핵심인 이 부회장을 쉽사리 놔줄 수 없기 때문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비선 실세' 최 씨의 존재를 언제 알게 됐는지, 그룹의 최 씨 일가 지원 결정에 관여했는지 등이 집중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검은 박 대통령-삼성-최순실 측으로 이어지는 '삼자간 거래'를 눈여겨보고,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왔다.
특검은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최씨측을 지원했다면 제3자 뇌물죄를, 박 대통령과 최씨가 경제적 공동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삼성의 최씨 지원이 대가성이 없다하더라도 뇌물죄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보다 촘촘하게 포위망을 구축해 이 부회장뿐 아니라 박 대통령도 옥죄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 장시호 제출 태블릿, 이재용 잡을 '스모킹 건' 되나
특히 지난 5일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제출한 태블릿 PC를 확보하면서, 삼성에 대한 수사가 급진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 소유로 알려진 이 태블릿에는 삼성이 최 씨와 딸 정유라 씨에게 78억여 원의 자금을 지원한 경로와 용처가 소상히 담겨 있었다.
특검 입장에서는 '스모킹건(사건 해결을 위한 결정적 증거)'을 확보한 셈이고, 이 부회장은 최악의 악재와 맞닥뜨렸다고 볼 수 있다.
특검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전날 "(태블릿에 확보한 이메일에는) 최씨의 독일 법인인 코레스포츠 설립 과정과 삼성이 보낸 지원금이 코레스포츠로 빠져나가 사용된 내역, 또 부동산 매입과 그 과정의 세금 처리 부분까지 나와 있다"고 말했다.
최씨와 이메일을 주고받은 삼성 관계자는 승마협회 부회장을 맡으며 최씨와 딸 정씨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였다.
◇ "최순실 모른다"던 이재용, 위증 혐의도 수사대상
특검은 또 이 부회장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한 증언들의 위증 혐의도 수사 대상에 넣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5일 국회 국정조사에서 "우리는 대가를 바라고 출연이나 지원을 한 적은 없다"면서 "최 씨의 존재에 대해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오래되지 않았다. 합병은 경영 승계와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부회장은 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관련, 검찰에서는 "최지성 부회장 등이 처리한 일이라 나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