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대표팀의 또 다른 이슈였던 '거북이 투수' 유희관(31 · 두산)의 발탁 여부는 뒷전으로 밀렸다. 물론 코치진 사이에서 논의가 진행됐을 수는 있지만 일단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희관은 논외였다.
특히 양현종(KIA)과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의 합류가 확정되면서 유희관은 이번에도 태극마크가 사실상 좌절됐다. 애초 유희관은 선발진의 공백을 받쳐줄 대체 선수로 물망에 올랐던 상황. 양현종의 합류가 결정되면서 필요성이 떨어지는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김광현(SK)의 대체 자원은 오승환이 낙점됐다.
이날 확실하게 유희관이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대표팀 승선이 무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는 2월6일 최종 엔트리 제출까지 큰 변화가 없는 한 유희관은 예비 엔트리에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
▲'ML 선수 홍역'에 잊혀진 이름, 유희관
이날 대표팀은 서울 리베라 호텔에서 진행된 예비 소집에서 첫 공식 미팅을 가졌다. 지난해 KBO 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짧게 만났지만 공식 소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인식 감독 이하 코치진과 선수들이 상견례를 했고, 주요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유니폼과 단복, 운동화 등 장비도 지급을 받으면서 임박한 대회를 실감하게 했다. 투수들은 공인구 롤링스도 받아 감각을 익힐 수 있게 됐다.
대표팀 붙박이 정근우(한화)는 "언제나 태극마크를 달면 가슴이 뛴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양현종(KIA)도 "몸 상태는 문제가 없다"며 최근 불거진 '재활' 해프닝에 대해 해명했다. 새로 발탁된 막내급 김하성(넥센)도 설렌 표정이었다.
이런 가운데 회견 당시 김현수(볼티모어)의 출전 여부는 확인이 필요했다. 김 감독이 당사자와 통화로 확실하게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밝혔다. 추신수(텍사스)에 대해서는 김 감독이 "소속팀에서 부상을 이유로 차출에 부정적인 것 같다"고 밝혔다.
오승환만도 논란이 될 이슈였는데 다른 사건도 생겼다. 회견 이후 김현수가 김 감독에게 전화로 출전 고사 의사를 전한 것. 여기에 KBO는 회견 중 추신수에 대한 김 감독의 언급에 대해 "텍사스는 일단 MLB 부상방지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의사만 전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어쨌든 상당히 어수선했던 소집일 일정이었다. 빅리거 문제가 대두되면서 유희관 문제는 밀렸다. 경황이 없던 취재진도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이번에 안 돼도 좌절 안 해…실력으로 뽑히겠다"
하지만 김 감독의 발언에서 실마리는 나왔다. 이날 김 감독은 회견 첫 발언으로 "코치진 회의에서 선수 교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면서 "김광현의 빈 자리에 양현종까지 빠졌으면 선발 투수를 뽑으려 했으나 양현종이 괜찮다고 해서 오승환을 뽑게 됐다"고 밝혔다.
사실상 유희관의 발탁이 무산됐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양현종의 대체 선수로 유희관이 거론됐지만 대신 마무리 자원인 오승환을 뽑은 것이다.
당초 김 감독은 지난 4일 대표팀 기술위원회 뒤 기자회견에서 유희관을 언급한 바 있다. 김 감독은 "양현종이 빠지게 되면 투수 문제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면서 "만약 선발 투수를 뽑는다면 류제국(LG), 유희관이 거론됐는데 류제국은 무릎 등 몸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28명 명단에 유희관의 자리는 없다. 대표팀은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리는 1라운드에서 이스라엘(6일), 네덜란드(7일), 대만(9일) 등 3경기를 치른다. 일단 선발 자원은 3명이면 된다. 양현종과 장원준(두산)에 우규민(삼성), 이대은(경찰) 중 1명이 선발 등판할 전망이다.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최상의 성적을 내기 위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투구수 제한 때문에 최대한 불펜 자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 감독은 "항상 성적에 대한 부담이 있다"면서 "선수 선발 과정에서 여러 일이 있었지만 1차 목표는 1라운드 통과를 위해 나 자신부터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희관의 경우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유희관은 최근 4시즌 동안 리그 최다승(55승)을 거뒀다. 하지만 시속 130km대 직구, 느린 구속 탓에 대표팀 승선은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 WBC가 호기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유희관은 여전히 '국내용' 딱지를 떼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10일 유희관은 "이번에 뽑히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고 나중에 당당하게 실력으로 뽑히고 싶다"고 강조했다. '거북이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