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대권 출마를 선언했고 측근들을 통한 간접화법으로 잇따라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만 발언에 따른 직접 책임은 피하는 것이다.
국내에 부재한 가운데도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인하는 영리한 전략이지만 '간 보기'나 '뜸 들이기'가 지나칠 경우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캠프도 조직도 없다"면서 메시지 전달은 꾸준히
반기문 총장은 측근 및 지인들을 통한 '메시지 정치'로 국내 정치에 대한 개입 수위를 꾸준히 높여왔다.
최근에는 미국을 방문한 경대수·박덕흠·이종배 의원 등 새누리당 충북지역 의원들과 만나 개헌 필요성 등에 대한 입장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이종배 의원은 "개헌에 대한 의사를 묻자 반 총장은 1987년 체제는 수명이 다했다"며 "대선 전에 개헌이 어렵다면 다음 정권 초기에 개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반 총장은 개헌으로 인한 대통령 임기 단축에 대해서도 "(임기를) 유연하게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최측근인 김숙 전 유엔 대사는 지난 28일 기자들과 만나 "(반 총장은 오는 31일까지) 국내정치에 관여되는 오해를 받을 만한 행위나 언급은 안 하겠다고 했다"고 밝혀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 전 대사는 반기문 캠프가 이미 국내에서 가동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국내 조직이 만들어졌다는 건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했고 "국내에 반기문 대선 캠프는 없다"고 단언했다.
반면 반 총장은 귀국을 불과 보름여 앞두고 있지만 이후 행보에 대해서는 철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귀국 후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가칭) 가운데 어느 쪽과 손을 잡을지, 심지어 기존 여당 행을 택할지조차 불분명하다.
최근 반 총장을 면담한 박덕흠 의원은 "반 총장은 오래 외국 생활로 인해 국내 상황을 보다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예측이 어려운 상태라고 밝혔다.
'기름장어' 별칭이 말해주듯 애매모호한 행보는 몸값 높이기에 효율적인 수단이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여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다보니 서로 반 총장에게 구애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의 말 한 마디를 듣고 전달하려는 데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귀국 후에도 이런 행보가 이어진다면 23만 달러 수수설 등의 후보 검증이나 정책 대결로 정면 승부하기 보다 '이미지 정치'라는 편한 길을 택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여권 관계자는 "서로 반기문 측근을 자처하다보니 반 총장의 친구 말조차 기삿거리가 되는 상황"이라며 "대변인과 같은 공식적 라인 없이 일부 소수의 사람을 통해 말을 전하다 보면 자칫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와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