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부터 할머니들은 그동안 요구했던 '공식 사죄'나 '법적 배상'이 합의문에 담기지 않자 공개적으로 반발해왔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최근 타오른 '촛불정국'마저도 이 문제만은 비껴가고 있으며, 해결은 더욱 요원한 실정이다.
◇ "더러운 돈 안 받아" 1억 원 회유 버틴 11명
나머지 12명에 대해서는 "의사 확인중"이라고 전했으나 신청 기간이 짧지 않았던 만큼 대부분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재(27일 기준) 생존자 39명 가운데는 모두 11명이 재단에 현금 지급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확인됐다.
이들은 재단 측에서 "살아계실 때 이거라도 받아야 한다"며 집요하게 회유해도, 1억 원을 들이밀어도 꿋꿋이 버텼다.
최근 취재진과 만난 이용수(88) 할머니는 "그건 돈이 아니다. 더러운 그건 안 받겠다"면서 "연세도 많고 하신 다른 할머니들은 몸은 아픈데 돈은 없고 당장 병원에 가야 하니까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복동(89) 할머니는 "100억이 아니라 1000억을 줘도 우리는 그 돈 받을 수 없다"며 "죽은 할매들이 한을 풀지 못해 저승도 못 가고 공중에서 참말로 통곡하고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는 "김태현 재단 이사장이 할머니들을 일일이 집요하게 찾아와 설득하고 회유하는 작업이 어마어마했다"면서 "그걸 거부한 할머니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 촛불집회 6대 과제에도 빠진 '위안부' 문제
여기에 고령으로 1년 새 7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정부를 향한 성토의 목소리는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원단체 정대협과 나눔의집, 그리고 대학생 단체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당국의 '마이웨이'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정대협 주최 '수요집회' 참석자 수는 올 초 1000여 명에서 최근 300명대로 줄었고,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 단체도 그 수가 부쩍 감소했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이후 촛불 민심이 타오르면서 현 정부가 자초한 이 문제도 불거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여전히 수면 아래에 놓여 있다.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꼽은 세월호 진상규명-인양, 사드 철회 등 이른바 6대 과제에도 '위안부' 문제는 꼽히지 못했다.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는 "여전히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공적인 책임이라기보다는 부분적 문제로 보고 있다"면서 "퇴진행동 등에서 이 문제의 중요성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 1년 동안 외국에 다니면서 합의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해왔다"며 "죽도록 다니면서 협조를 구했는데 대통령이 합의했다고 하니까 이미 문제가 다 해결된 줄로 알고 있더라"고 억울해했다.
◇ "내 나이 89,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
이용수, 김복동 할머니 등 생존 피해자들과 400여 개 시민단체는 화해·치유 재단 설립에 반발하며 지난 6월 별도로 '정의·기억재단'을 발족했으며, 기금 모금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피해자 12명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일 합의 시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 할머니는 "이제 곧 내 나이 여든아홉,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가 아니냐"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여성들을 위해, 여성인권 활동가로서 저는 이 문제만은 꼭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하나 후세에게 참 미안하고 부끄럽다"면서 "하지만 우리 문제라도 꼭 밝혀서 올바른 역사를 알도록 하는 게 내 소원이다"라고 덧붙였다.
나눔의집 안신권 소장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위안부 합의는 정말 무효 선언을 해야 한다"며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고 공개적 절차를 거쳐 새로운 합의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28일 제1263차 수요집회는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에서 올해 별세한 할머니들을 위한 추모제로 열린다. 영하의 날씨에도 김복동, 길원옥(87) 할머니가 참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