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실리는 재정정책…잘 써야 '약(藥)'

내년 우리 경제가 2%대 중반의 저성장이 예상되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경제부총리로 내정됐던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첫 일성이 재정지출 확대의 필요성이었고, 정치권에서도 추경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평소 말을 아끼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전례 없는 직설적 화법으로 재정의 더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재정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한목소리로 재정 역할을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 힘실리는 재정정책

한은의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1.25%)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미국이 본격적인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통화정책의 여력이 매우 제한돼 있다. 즉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금리를 더 내릴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는 의미다.

반면 경기대응의 또 다른 수단인 재정정책은 상대적으로 여력이 많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올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0%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OECD 회원국 평균 부채비율 115.2%에 비해 크게 낮다.

이 때문에 IMF는 우리나라를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재정정책 여력이 큰 국가로 평가했다.지난해 열힌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회의에서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를 만난 리가르드 IMF 총재는 ‘한국이 재정정책을 더 과감히 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이처럼 좋은 것은 GDP 대비 정부부채를 40% 이내에서 관리해온 덕분이다.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성장에 주로 통화정책으로 대응한 결과 2008년 5.25%였던 기준금리는 올해 1.25%까지 떨어졌다.

반면 GDP대비 재정지출을 21% 안팎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부부채는 40% 이내에서 관리되고 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GDP 대비 정부지출 비중은 평균 21.1%였다.

통화정책 여력이 거의 소진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재정정책이 경기대응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논리는 자연스런 것이다. 여기에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당선자가 경기지원을 위해 재정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재정정책 강화에 힘을 실어준다.

◇ 양날의 칼

그러나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부채 급증 등 경제 전반에 거품을 양산한 것처럼 재정정책도 경기부양 효과도 있지만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양날의 칼과 같다.

지난 2011년 GDP 대비 31.6%였던 정부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37.9%로 급증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등에 재정을 대규모로 쏟아 부은 결과다. 건설경기 호조에 힘입어 일시적인 성장률 제고 효과는 있었지만 그만큼 부채비율도 크게 악화됐다.


따라서 정부가 그동안의 추경처럼 단순히 수요 진작을 통한 일시적 성장률 제고에만 머무른다면 장기적으로 우리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부채 폭증을 불러온 것처럼 정부지출 확대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세입을 초과하는 재정지출은 정부가 빚을 내 미래의 소비를 앞당겨 한다는 의미다.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부채를 늘린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경제의 회복을 지연시킬 만큼 가계가 빚더미에 오른 상황에서 정부부채마저 급증한다면 우리 경제은 취약해진다. 경제가 허약해 진다는 것은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다.

◇ 재정정책의 전략이 중요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되 과거의 추경처럼 예산을 낭비하는 즉흥적 방식에서 탈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워, 계획성 있게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경제의 시급한 현안인 ‘구조조정’, ‘신성장산업’, ‘고령화대책’ 등에 대한 투자를 조언한다.

정부관계자는 당장 재정지출을 늘릴 경우 세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 확충을 위해 공공분야가 선도적 투자를 하는 방안이다. 민간과 수익은 물론 손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AI(인공지능), 로봇, 우주산업 등 차세대 성장 산업에 정부가 적극적인 투자로, 선도해 가는 방안이다.

또 한계에 다다른 기존의 도로, 항만 등의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대신 안전, 보건, 환경 등 무형의 SOC 투자를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학교 노후시설 교체, 내진설계를 반영한 기존건물의 재건축, 미세먼지 대책 등이 있다.

그리고 군함 건조 등 회계연도가 수년에 걸쳐 있는 사업을 앞당겨 집행하는 방안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김영준 연구위원은 “상시 구조조정이 촉발할 수 있는 고용환경의 악화에 대비해 실업자 금융지원, 재취업 창업교육 및 지원 등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재정지출을 확대해 구조조정에 따른 경기둔화 압력을 완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는 등 대형 정치적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자칫 정치권에 휘둘려 재정지출 확대가 선심성 예산 남발로 이어진다면 우리 경제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재정여력을 잘 활용해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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