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노동부가 이랜드파크 계열사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 노동자 4만 4360명에게 금품 83억 7200여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했다.
하지만 이처럼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임금을 체불해도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을 체불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뿐이어서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랜드가 빼돌린 약 84억원을 1% 이자로 1년 동안 은행에 쌓아두기만 해도 8천여만원이 생긴다는 계산을 고려하면 현행 수준의 형사처벌로는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14년 기준 임금체불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업주 가운데 벌금액이 체불액의 30% 이하인 경우는 62.3%나 된 반면, 반대로 벌금이 체불액의 절반을 넘긴 사례는 6.4%에 불과했다.
한 노동부 관계자는 "비단 임금체불 뿐 아니라 산업재해 등 여러 부당노동행위들은 해외 선진국처럼 대기업이라도 휘청거리도록 강력히 처벌하면 금방 근절될 문제"라며 "시급 몇 푼만 체불해도 거액의 벌금을 본사가 직접 내도록 하면 스스로 근로감독에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노동부 관계자는 "현행법으로는 더 강력한 처벌을 내릴 수 없고, 우리로서는 꾸준히 감시할 뿐"이라며 "또 형사 사건은 실제 피해자들의 처벌 의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단기간 근로한 사람들의 진술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며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피해 진술을 호소했다.
신세계 그룹이 운영하는 '위드미' 편의점 두 곳에서 잇달아 1년 가량 일했던 대학생 신모(22)씨는 계약한 시간보다 15분 일찍 출근하고, 퇴근할 때에도 재고와 돈 정리를 하느라 4, 50분 늦게 퇴근했지만 시간 외 근무수당은 단 한번도 받지 못했다.
신씨는 "퇴근할 때 돈에 손실이 있으면 우리들의 급여에서 채우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증언했는데, 정산손실 금액에 대한 급여 차감은 명백한 임금 체불이다.
대학생 이모(21)씨가 일하고 있는 CGV 영화관에서는 고객이 많은 날에는 수당을 받지 않고 추가로 일을 시키고, 고객이 적으면 임의로 직원들을 30분 일찍 퇴근시키는 대신 시급을 깎는다. 이것 역시 최근 논란이 된 이랜드에서도 사용했던 전형적인 휴업수당 미지급 수법이다.
이씨가 겪은 부당노동행위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이씨는 "여성 직원은 반드시 스타킹과 구두, 치마 유니폼 등을 입어야 하는데 스타킹과 구두는 사비로 충당해야 하고, 유니폼도 직접 세탁해야 한다"며 "'생기 있는 입술'을 띄어야 한다며 붉은 립스틱을 바르도록 하고, 화장이나 손톱을 정돈하지 않으면 '꼬질이'라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고 주장했다.
또 "근무 중에는 고객이 보지 않는 매장 안쪽에서도 앉을 수 없다"며 "넓은 영화관에서 아래층 휴게실까지 가려면 10분 가량 걸리는데 휴식 시간은 무조건 15분씩만 줘서 쉬지 않고 일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임금체불을 포함한 다양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노동부는 근로감독 후 시정 조치를 내리고, 이행되지 않을 경우 검찰에 송치해 형사 처벌을 받도록 한다.
하지만 만약 업주가 형사처벌 후에도 체불된 임금 등 손실을 보상할 수 없다고 버티면 노동자가 직접 민사소송을 벌일 수밖에 없는데, 상당수 노동자들은 이를 포기하고 만다.
이에 대해 알바노조 용윤신 사무국장은 "대부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체불 임금은 적게는 몇만원, 많아도 백만원 안팎 수준인데 법정까지 가기 어렵지 않겠나"라며 "소액 임금 체불 사건은 근로감독관의 시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별도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길을 열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김요한 노무사도 "우선 처불 수위부터 대폭 강화해야 즉각적인 효과를 거둘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노동 전문 법원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일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성추행 사건을 맡고 있던 서울의 한 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이 근무 도중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할 만큼, 근로감독관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한 명의 근로감독관이 한 달에 7, 80건씩 쏟아지는 상담 사건을 처리하느라 정작 근로 감독에 꼼꼼히 나서기 어려운 현실을 개선해야 숨어있는 임금 체불도 잡아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해외의 경우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별도로 노동법원을 설치해 운영하는 사례가 보편적이기도 하다.
김 노무사는 "노동자들이 법원 대신 노동청을 선호하는 이유는 민사소송보다 더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라며 "노동자들은 노동법원을 통해 손쉽게 임금체불 등의 문제에 소송을 제기하고, 근로감독관은 본연의 감독 임무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