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악인, 유다>에서 제1부는 유다에게 덧씌워진 배신의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며, 제2부는 그렇게 형성된 부정적인 유다의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활용된 면면을 뜯어본다. 이어 제3부는 근대 이후 유다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소개한다.
유다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던 중세 시대의 종교적 미술작품이나 문헌을 찾아보면, 유다의 얼굴을 정면에서 표현한 경우가 없다. 유다의 얼굴을 반쪽만 보여준 이유는 유다의 ‘사악한 한쪽 눈’을 감춰 그 부정한 기운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실 ‘지옥의 상징’으로서의 유다는 초기 기독교의 성경 저자들이 만든 ‘왜곡의 신화’에서 출발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대 복음서에 22번에 걸쳐 언급되는 유다가 인간적인 면모를 잃고 서서히 사탄으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첫 복음서인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몸값을 요구한 것은 대제사장이었지만 이후에 쓰인 마태복음에서는 유다가 요구한 것으로 나온다거나, 마가복음에서는 죄를 뉘우치는 유다가 마지막 요한복음에 와서는 뼛속까지 악인으로 묘사된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렇다면 복음서 저자들은 그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왜 유다를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몰아간 것일까? 유다가 예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지만, 그것도 쉽사리 납득하기가 어려운 설명이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행하라.”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서 공히 예수가 유다에게 한 말이다. 마치 예수는 이미 유다가 곧 자신을 해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유다의 배신이 예수의 부활을 위해 실행되어야 할 중간 단계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때 복음서 저자들이 유다를 유대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규정한 것은 초기 기독교 시대 당시 다양한 종파가 경쟁했던 정세에서 기인한다. 그들이 속해 있던 주류 종파인 사도교회가 유대인 기독교와 같은 다른 종파들을 누르고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유다와 같은 희생양이 필요했던 셈이다.
중세 시대에 유다의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교회가 지배하는 시대에 예수의 믿음을 변절로 갚은 유다는 절대악으로 자리매김해 큰 공포심을 조장했고, 이는 다양한 형태로 중세의 풍속을 규율하게 된다. 교부 철학자로 잘 알려진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배신행위에 대한 속죄가 아니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더 큰 죄로 보았다. 《신곡》 〈지옥편〉에서 단테는 가장 악랄한 죄인을 가둔 맨 아래층 지옥에서 악마 루시퍼에게 뜯어먹히며 고통받는 유다를 상상하며 치를 떨었다. 중세 연극이나 교회에 걸린 그림에 등장하는 유다의 외양은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거칠고 얼룩덜룩한 피부는 비늘로 덮여 있으며, 사탄이 유다의 뱃속에서 아기를 꺼내는 엽기적이고 추악한 형상까지 등장한다. 은화 30냥에 예수를 판 유다는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던 유대인을 옭죄는 또 하나의 무거운 족쇄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유다에 대한 적대가 현실세계에서 향한 곳은 유대인과 그들의 공동체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과정을 묘사한 연극인 예수수난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대인을 극단적인 악의 화신으로 설정했다. 없는 죄를 날조해 유대인 공동체를 핍박한 12세기 영국의 사례도 충분히 끔찍하지만, 오늘날 독자에게는 드레퓌스 사건이 더욱 피부에 와닿을 것이다. 빈약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적국에 첩보를 팔아넘겼다는 이유로 기소된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는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 누명을 벗기까지 10년 이상 숨죽여야 살아야 했다. 여기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까지, 가까운 과거에 이르기까지도 ‘유다 혐오’가 기승을 부린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부터 유다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가 움튼다. 과학과 사상의 발전이 교회권력이 가둔 이성적 사유의 능력과 학문의 자유를 해방시키면서 유다의 ‘복권’이 시작된 것이다. 영국의 수필가 토머스 드퀸시는 예수를 결함 있는 인간의 지위로 내려놓은 반면 유다를 그런 예수를 꿰뚫어보는 통찰을 지닌 인물로 재해석했으며, 아르헨티나의 문호 보르헤스는 유다를 신의 기획에서 이탈해 자유의지를 실현한 철저히 근대적 개인으로 구현했다. 그리스의 작가 카잔차키스의 유다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도록 유약한 예수를 독려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무엇보다도 로마 교황청이 불과 10여 년 전 구태의연한 관점에서 벗어나 유다에게도 회개의 가능성을 부여하기에 이른 점은 유다를 희생양으로 삼아 편견과 혐오의 역사를 쓴 종교의 세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이용되고 재구성되기를 반복한 유다의 기구한 운명은 종교에 구속되었던 과거에나 세속적인 현대사회에나 큰 공감대를 형성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신과 악이라는 테마가 잠재해 있는 인간의 내면에 호소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친화력’이 지난 2000년간 사탄부터 혁명가까지 실로 다종다양한 모습으로 유다가 재해석되는 이유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의 부제인 “누가 그(유다)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답변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문헌을 따져보면 교세 확장을 위해 유다를 희생양으로 삼은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이겠지만, 그 이후 유다의 만들어진 이미지를 수용하고 거부한 것은 인류 자신이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2006년에 공개된 유다복음은 유다에 대해 재조명함으로써 오래된 선입견을 깨고 저주받은 제자를 축복받은 제자로 복원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유다복음이 남긴 더 큰 영향은 기독교 교리의 근간이 되는 성경에 대한 해석이 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유연한 해석과 이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다만 유다복음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유다를 악인으로 보는 시각과 반대로 그저 어쩔 수 없이 악역을 수행해야만 했던 인물로 보는 시각 간의 첨예한 충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_5. 선한 배신? 유다복음, 149쪽
사탄의 도구로서의 유다, 또는 악취를 풍기며 돈주머니를 움켜쥐고 있는 고리대금업자인 ‘유대인 유다’의 이미지는 허황된 반유대주의 사상을 거부하던 계몽의 시대에는 이미 낡은 생각에 불과했다. 하이엄 맥코비의 주장처럼, 이런 변화는 거대한 의식의 전환이었다. “고리대금업에만 종사해야 한다는 제한 때문에 고리대금업자가 되어 비난을 받아야만 했던 유대인들에게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자유가 허용되었다. 마침내 유대인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되면서 투표를 하고, 관리가 될 수 있는 길도 생겨났다. 많은 유대인이 이런 변화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_10. 유다, 계몽 시대의 상징이 되다, 291~292쪽
피터 스탠퍼드 지음 |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416쪽 |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