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이마트 은평점은 손님을 끌려는 판매원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터라 금요일 오후부터 손님들도 꽤 많이 찾아 장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가라앉아 활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불경기는 계속되는데 물가는 오르면서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져 가기 때문이다.
◇ 치솟는 물가, 장보기가 겁난다
여기에 고병원성 AI의 습격으로 계란파동이 덮쳤다. 계란값 급등과 구매 제한으로 비교적 싼 계란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이마트 은평점 김재민 파트너는 “30알짜리 계란 제품은 아침에 소량만 입고돼 금방 나간다. 오후에 나오면 살 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 월급은 그대론데, 굶을 수는 없고…
성미미(59.서대문구 홍제동) 씨는 “벌이는 늘지 않은데 물가는 오르고, 다른 곳에 쓸 돈은 없지만 먹고 살아야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산다”고 말했다.
성 씨는 “상황에 맞춰 살아야죠.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최민아(49.은평구 불광동) 씨도 장 보기가 부담스럽다. 최씨는 “총액으로 보면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게 실감이 난다”면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많이 망설인다”고 토로했다.
휴가여서 아내 대신 장을 보러나온 문병호(48.남.서대문구 홍은동) 씨는 “요즘 아내가 힘들다며 한숨을 쉬는데 일만 하느라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면서 “직접 장을 보러 나와보니 가격이 제 생각보다 비싼 것 같다. 월급은 한정돼있는데 걱정된다”고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 한 푼이라도 아껴야
이씨는 “가격도 오르고 경제적으로 불안하니까 많이 안사는 것 같다”면서 “세일하는 것만 골라 사고 나부터도 그렇다”고 말했다.
5살 난 아들과 함께 장을 보던 변경일(39.여.은평구 응암동) 씨는 “오랜만에 마트에 나왔다”면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온라인쇼핑을 주로 한다. 내 카드가 할인되는 날까지 기다리고, 각종 쿠폰을 적용하는 등 가장 싼값에 사려고 모든 수단을 다 쓴다”고 멋쩍게 웃었다.
◇ 기습인상은 반칙, 정부는 기업 편
성미미 씨는 “국정농단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업체들이 갑자기 가격을 올린 것은 반칙”이라고 비판했다.
변경일 씨는 “너무 오래 반복되지만 어쩔 수 없어서 이제는 무뎌지는 것 같아 더 짜증이 난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금수저들이라고 금으로 된 라면을 먹는 건 아니지 않느냐”면서 “먹는 것은 똑같고 굶을 수는 없는데 이런 식으로 이익을 올리려고 가격을 올리면 서민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민아 씨도 “서민들은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면서 “가진이들이 더 많은 걸 가지려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면 그냥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고현희(52.여.서대문구 북가좌동) 씨는 결국 정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 씨는 “정부가 소비자를 위해 뭘 한다는 느낌을 못받았고 결국 소비자보다는 기업 편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 자괴감과 각성 사이
주부들은 “내년이 더 걱정되지만 너무 힘이 없고 걱정을 한들 방법이 없지 않나”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민의 힘으로 정부를 바꿔야한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주부들은 “이상한 쪽으로 돈이 새는 걸 현실로 보고 있는데도 우리 탓으로 돌리고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면서 “이제 약이 오르고 화가 난다. 촛불집회를 더 열심히 나가야 할 것 같다”고 다짐했다.
거대한 폭풍 같았던 병신년의 세밑. 대한민국 주부들은 자괴감과 각성 사이에서 다가오는 정유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