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앞에 주홍글씨처럼 쓰인 '위안부'라는 세 글자를 평생토록 새기고 살아온 이용수(89) 할머니.
이 할머니는 이번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를 보며 그동안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대한민국이 저희껍니까?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박근혜가 뭔가요. 대한민국 지도자가 됐으면 국민을 위해야지요. 더 짓밟고 상처를 주는 건 아니잖아요."
28일이면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스스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고 말한 합의가 이뤄진 지 1년이 된다.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말도 안되는 소리, 한마디도 상의도 없었던 합의는 무시하겠다"며 격노했던 이 할머니.
1년이 지난 지금 이 할머니의 마음속 어디에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의 지도자란 자가 저런 엉뚱한 수작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없으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저희들이 살아 있을 때 꼭 사죄받고, 올바른 역사를 쓰도록 할 겁니다."
한·일 양국 정부는 할머니들의 반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지난 7월 '화해·치유재단'을 출범시켰다.
이어 두 달 뒤 일본정부는 피해자 지원 명목으로 10억엔(108억여원)을 한국으로 송금했다.
화해·치유재단은 정부가 인정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을 대상으로 하는 현금지원액을 결정했다. 생존 피해자에게는 총 1억원, 사망 피해자에게는 총 2천만원 규모의 현금이 지급하기로 했다.
지급 결정 당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나눔의 집 등에 머물고 있는 12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은 수령 자체를 거부하고,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화해·치유재단은 지난 23일 "모두 34명의 할머니들이 수령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 "역사파는 일 안돼…" 남은 피해 할머니 39명 뿐
약속한 출연금 10억엔을 송금한 이후 일본정부의 태도는 더욱 과감해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9월 7일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열린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한 데 이어 10월 3일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 편지를 하라는 요청이 일자 "털끝만큼도 생각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한일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 집회'를 이어가는 이유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김복동(91) 할머니에게 28일은 한일 합의 1주년이 아닌 그저 올해를 정리하고 또다시 수요집회를 이어가는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다.
"1년 전에 자기들끼리 협상했을 때 피를 토하고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라가 힘이 없어 억지로 끌려가 희생당한 것도 억울한데, 이렇게 역사를 팔아먹을 수 있나요. 바라는 건 하나뿐입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
이제 남아있는 '산' 역사는 모두 39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