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옹달샘(장동민·유세윤·유상무) 멤버들의 여성혐오 발언이 억눌려 있던 여성들이 문제제기하고 부당함을 표출하게 하는 도화선이 됐다면, 올해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그 역할을 했다.
17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캠퍼스 호암관에서 열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콜로키움 '포스트-메갈 시대의 페미니즘'에서도, '강남역 살인사건'을 경험한 이후 비로소 '말'하기 시작한 새로운 세대의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가 비중 있게 소개됐다.
◇ "페미니즘은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문제'"
이 씨는 "저는 처음부터 여기 있었다. 사람들이 저에게 들려주는 말을 거부하고 제 말을 시작한 순간, 그제야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것이 사회에서 제 존재감이 드러나게 된 시점"이라며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추가적으로 익히는 게 아니라, '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설마 이 정도는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겠지, 싶은 것들조차 안 돼 있었다. 마침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있었고 세상에 나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임신중단 합법화,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박근혜 대통령 퇴진시위 오프라인 모임 등으로 인해 여성들은 '가시화'되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이런 움직임을 이끈 시작"이라고 진단했다.
◇ 젠더편향적인 온라인 공간의 '대안' 지향하는 '페미위키'
페미위키 운영진 한우리 씨는 마이크로소프트 채팅 봇, 딥러닝 알고리즘 글로브, 구글 검색 알고리즘 등이 데이터 내에 함의돼 있는 사회적 편견까지 학습해 성별·인종·소득에 대해 '편향적 결과'를 내놓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여성혐오 페이지인 '김치녀'는 많은 신고에도 페이지가 유지되어 온 반면, 여성혐오에 반발하는 '메르스갤러리저장소' 페이지는 커뮤니티 표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세 삭제하는 페이스북(현재는 두 페이지 모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과 일반인 대상 몰카·소아성애적 게시물과 댓글은 거의 규제하지 않는 다음 등도 온라인 공론장을 '기울어지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문을 연 페미위키는 태아중심적인 '낙태'라는 말 대신 여성중심적인 '임신중절'이라는 단어를 소개하는 등 '여성주의 정보집합체'를 지향한다. 향후 이미지 아카이빙도 할 계획이다. 유사한 해외 사이트로는 '긱 페미니즘 위키'(링크)가 있다. 한 씨는 "한국에서 잘 보지 못했지만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페미니즘적 개념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는 사이트다. 늘 소수집단이었던 여성 IT인들이 모인 우먼 커뮤니티"라며 "내년쯤 (긱 페미니즘 위키에서) 재미있고 중요한 표제어를 뽑아 번역서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 지지할 정당이 없어 만들었다 '페미당당'
페미당당의 심미섭 씨는 "진보 정당조차 아재정치와 (당내) 성폭력이 만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놓고 지지할 만한 정당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을 만들고자 했다. '페미당당'이라는 이름만 지었는데도 시원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페미당당은 '페미니즘 세미나', '거울행동', '임신중단 합법화 시위' 등을 진행해 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는 다른 여성단체들과 함께 '페미존'을 운영, 집회 참가자들에게 차별문구 및 발언, 성추행과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마련했다.
심미섭 씨는 "(막상 시위에 나가니) '기특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아저씨들은 농담을 걸거나 몸을 만졌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이것이 집회인 줄 알았고 자유로운 발언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라며 페미존 운영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발언권을 보장하라고 투쟁하고 있다. 평안하고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는 사회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아재들과, 모든 약자가 시민으로서 논의에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페미니스트 중 누가 더 큰 민주주의를 만들고 있을까.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고 강조했다.